<AI가 선택하는 브랜드의 비밀: AEO>가 출간되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책들이 트렌드와는 무관한(혹은 초월한) 마케팅/브랜딩 기본서에 가까웠다면, 이번 책은 지금 가장 핫한 주제인 AI, 그중에서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단계인 AEO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북토크나 강의 요청이 많이 오고 있다.
그중에서 <회사 밖 나를 위한 브랜딩 법칙 NAME> 때 북토크를 진행했던 청주, 대구, 부산 세 곳은 이번에도 북토크를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빡빡하게 스케줄을 잡았다. 금요일 오전 6시 라디오 방송을 끝내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 북토크를 하고, 그다음 날 바로 부산에 가서 북토크를 한 뒤 서울로 올라오는 일정이었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에는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줄 필요가 있다. 일은 쉴 수 없을지언정, 일하면서도 회복되는 힐링 공간을 가면 번아웃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게 내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와 부산의 ‘핫한 카페’에 다녀왔다. 이번 주 인사이트 토크는 두 곳의 카페에 대한 이야기다.
카페를 갔을 때 커피 맛이 없어도 이해하려는 편이지만, 절대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음악이다. 요새 트렌드를 반영해 멋지게 공간을 꾸미고, 좋은 원두의 필터커피를 선보여도 최신 유행 가요를 관성적으로 트는 곳은 오래 있기 힘들다. 빠르게 먹고 나가야만 하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온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그걸 바랐다면 나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공간과 커피 맛이 좋은 곳 중에서 음악이 나쁜 곳은 별로 많지 않다. 이 모든 게 ‘감각’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 반월당역 근처에 위치한 인터플레이는 그중에서도 음악이 가장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네이버플레이스에 올라온 카페 대표 이미지를 보더라도 ‘소란 수다 번잡 싫어요’라고 나온 만큼, 사장님은 소리에 민감한 분인 듯 보였다. 간판이 없는 카페를 어찌저찌 찾아 들어가니 ㄷ자 모양의 바 좌석으로 구성된 작은 공간이 나왔다. 매장 내부는 수많은 재즈 바이닐로 가득했고, 그 공간을 채우는 건 보통 카페보다 큰 음량의 재즈 음악이었다. 재즈와 힙합을 특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은 내 대구 단골 카페구나”라는 운명론적 느낌을 받았다.
도쿄에 가면 대부분의 카페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심지어 라멘집에서도. 일본 버블 경제 시기에 재즈라는 감성이 전국적으로 수입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골 재즈바로 알려진 DUG가 유명한데, 인터플레이는 담배 냄새가 없고 모던한 버전의 1층에 위치한 DUG 같았다.(DUG는 '파다'라는 의미의 DIG의 과거 분사처럼 지하에 위치해 있다)
전반적으로 커피 가격은 높았지만, 그에 합당한 맛과 공간 덕분에 오히려 합리적인 가격이라 느꼈다. 조용하지만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노트북으로 업무를 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공간이기도 했다. 좋은 음악 속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 하고 싶다면, 혹은 간지나게 업무를 보고 싶다면 인터플레이를 강력 추천한다.
스레드에서 부산 카페 추천을 받았다. 게시글이 알고리즘을 탄 건지, 부산 분들이 카페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부산에 유독 좋은 카페가 많은 건지 수십 곳의 추천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세계 최고의 카페 100곳 중 하나로 선정된 모모스 카페는 예상대로 응답에 올랐다. 지금은 엄청난 인파로 대기 줄이 어마어마하다던데, 다행히 예전에 다녀와서 아쉬움은 없었다. 부산에서 카페 하는 분들 사이에 최근 가장 핫하다는 에어리도 평일이라면 대기를 하고 가고 싶었지만, 토요일의 대기 줄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다음을 기약했다.
서울로 따지면 조금 차분한 성수동 같은 전포동의 스트럿커피와 나이브브류어스도 많이 언급되었지만, 조용히 작업하기에는 공간이 붐빌 듯했다. 그래서 커피가 맛있고 공간도 좋으면서,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카페를 찾았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수안동에 위치한 레이지모먼트 커피스탠드를 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처음 가보는 동네였는데, 언뜻 보기엔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주택가였다. 네이버 지도를 믿고 걸어 도착한 곳에는 저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세븐일레븐 간판이 나를 반겨주었다. 뭐지 싶어서 지도를 보니 2층에 카페가 있었다. 빌딩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 2층에 도착했더니 전혀 다른 풍경이 나를 맞았다. 우드 톤의 따뜻한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입구에는 이곳과 연결된 듯한 브랜드 대표님들의 명함이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인 ‘알렉산더 커피’의 명함도 보였다.
주문을 하려고 하자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반겨주었다. 아니 환대라는 말이 더 적절할 듯 하다. 네이버 리뷰에서도 친절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환대’가 무엇인지 확연히 느껴질 만큼 반갑게 맞이해 주니 공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산미 있는 드립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투명한 유리 통에 담긴 원두 세 종류를 보여주었고, 나는 ‘게이샤’를 선택했다. 하루 종일 만두 하나만 먹은 지라(신발원의 만두는 맛있었다. 가면 인당 3개는 시킵시다) 디저트도 맛보고 싶어 딸기 케이크도 하나 시켰다.
바 좌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물과 함께 커피와 케이크가 나왔다. 커피와 디저트가 모두 수준급이었다. 커피가 맛있으면 디저트가 별로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꽤 있는데 이곳은 둘 다 좋았다.
재미있는 건 이곳이 드립 커피와 디저트 가격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냥 데이트 나온 사람들로 찬 만석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가득 채운 ‘단골 만석’ 느낌이었다. 객단가가 일반적인 카페보다 높은데도 단골 장사가 된다면, 카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듯하다. 그 이유는 뭘까 싶었다.
맛있는 카페는 많다. 하지만 커피가 맛있으면서 공간이 힙하지만 편안하고, 화룡점정으로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분들이 친절한 곳은 극히 드물다. 아마 이 조합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북토크 막바지 준비를 하느라 나도 모르게 커피를 빠르게 후루룩 다 마셨는데, 직원분이 시키지도 않은 차를 마시겠느냐고 묻고 내어 주었다. 이런 사소한 친절이 아마 단골을 만드는 기제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커피 맛이라는 본질이 뛰어난 건 말해 뭐해지만.
내 마음에 쏙 든 대구와 부산 카페의 공통점이라면, 높은 가격과 그에 합당한 만족감이었다. 박리다매는 대기업의 무기다. 규모와 시스템으로 단가를 낮추고, 유통과 광고로 물량을 밀어붙일 수 있으니까. 반대로 스몰 브랜드의 무기는 고가만족이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 맛/공간/음악/환대 같은 디테일을 촘촘히 쌓아 “이 정도면 비싸지 않다”는 납득을 만든다. 인터플레이와 레이지모먼트 커피스탠드는 그걸 제대로 보여준 두 곳이었다. 다음 대구, 부산 방문 때도 다시 가고 싶은 카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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