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저희 술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게 제로 콜라예요.”
한 대학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말이라고 들었다. 요새 대학생들은 그만큼 술을 잘 안 마신다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시절은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 확인하게 되는 때다. 다시 말해 MT가서 마시고 토하고, OT가서 오로지 토하는 그런 때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제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마실 법한 그 시절에도 술을 덜 마신다.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류업계는 물론이고, 술을 파는 수많은 자영업자에게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관련 통계를 찾아보니 이 흐름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OECD와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15세 이상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은 순수 알코올 기준 8.7리터였고, 2008년 9.5리터에서 꾸준히 낮아진 수치다. 술 소비가 예전만 못하다는 감각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단순히 술을 끊는 데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술을 마시는 기분은 느끼고 싶어 한다. 바로 논알콜/무알콜, 그리고 라이트 주류의 성장이다.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마트의 2025년 라이트 맥주 매출은 전년 대비 32% 늘었고, 무알콜·논알콜 맥주 매출도 21%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맥주 매출은 6.4% 줄었다. 사람들은 취함 자체보다 분위기, 목 넘김, 참여감 같은 술의 주변 경험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대학생과 직장인이 밤에는 술을 마셨다면, 낮에는 커피를 마셨다. 아니, 낮뿐만이 아니다. 일하려고, 공부하려고, 마감을 버티려고 커피로 밤낮을 밀어붙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커피 소비도 결이 달라지고 있다. 총량이 끝없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디카페인 쪽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25년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은 처음으로 연간 1만 톤을 넘어 1만40톤을 기록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4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반면 일반 커피 원두 수입량은 2022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커피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카페인을 덜어낸 커피로 옮겨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흐름은 디카페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주목받는 대체 커피 브랜드 산스(SANS) 같은 사례를 보면, 이제 사람들은 단지 카페인을 줄인 커피를 찾는 데서 더 나아가 원두 없이도 커피가 줄 수 있는 향과 감각, 그리고 사회적 경험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에 반응하고 있다. 산스는 재료공학 기반의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식물성 재료의 로스팅, 발효, 초미분 분쇄 같은 과정을 거쳐 커피의 풍미 구조를 새롭게 구현하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접근이 단순히 “커피 비슷한 음료”를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커피 애호가였던 창업자가 커피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원두 가격 상승 이후에도 그 문화와 감각을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에 가깝다. 커피를 끊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다른 방식으로 계속 사랑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묘한 시대다. 원본의 핵심 기능을 덜어낸 상품이 오히려 더 사랑받는다. 술에서 알코올을 빼고, 커피에서 카페인을 뺀다. 예전 기준으로 보면 어딘가 빠진 맹탕 같은 물건이다. 붕어빵에서 팥을 뺀 껍데기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그 껍데기를 기꺼이 즐긴다. 아니, 때로는 그쪽을 더 선호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철학자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감각 세계의 사물보다 더 참된 차원으로서 이데아를 상정했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사물은 그 완전한 이데아라는 형상의 불완전한 그림자 혹은 모사라고 여겼다. 그리고 예술은 그러한 불완전한 모사인 사물을 다시 재현한 것이므로 한 번 더 이데아에서 멀어진 모방으로 보았다. 여기서 자주 함께 언급되는 말이 미메시스(mimesis)인데, 그리스어로는 ‘모방’ 혹은 ‘재현’에 가까운 뜻이다.
원형이 있고, 그 원형에 가까울수록 우월하며, 거기서 멀어질수록 열등하다는 발상은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프레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위계를 뒤집어 읽으려 했던 철학자가 들뢰즈다. 들뢰즈는 플라톤의 모델-복제 구도를 비판하면서 ‘시뮬라크르’를 단순한 저급 복사본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원본과 복제의 위계 자체를 흔드는 존재로 읽었다. 그러니 시뮬라크르는 “열등한 가짜”라기보다, 원본 중심 사고를 무너뜨리는 다른 질서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지금은 어쩌면 시뮬라크르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인간 중심 세계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판단을 분담하는 세계로, 오프라인만이 진짜이던 시대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동시에 현실을 구성하는 시대로, 카페인이 없는 커피와 알코올이 없는 술이 더 이상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취향과 문화가 되는 시대로 넘어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빠진 것”이던 것이 이제는 “조정된 것”이 되고, “덜어낸 것”이 오히려 “더 나에게 맞는 것”이 된다.
내가 종종 참가하는 SMCC만 봐도 그렇다. 이곳은 아침에 맨정신으로 커피를 마시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닝 레이브 문화를 보여준다. 최근 국내외 매체들은 서울의 모닝 레이브와 서울모닝커피클럽(SMCC)을 술 없는 사교와 웰니스 문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풍경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뮬라크르의 시대를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취하지 않는 술의 신 바커스, 잠들지 않는 백설공주. 원본의 굴레를 벗어던진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시뮬라크르의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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