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만난 21세기 도사로부터 얻은 3가지 보물

by 캡선생

* 인물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서 '21세기 도사' 및 존칭 없이 '그'로 지칭합니다.


몇 년 전부터 실제로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텍스트로는 다 담기지 않는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신문과 책을 통해 그의 글을 종종 접했다. 그가 주로 다루는 건 사주명리나 풍수지리 같은, 흔히 비과학이라 분류되는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내게 그것은 열등한 의미의 비과학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적 사고가 닿지 못하는 경계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다른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텍스트로 다듬어진 문장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그의 생각이.


하지만 삶이 바빴다. 아니,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살았다. 그와의 만남은 쉽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의 연락처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 흔한 이메일 주소 하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리스펙하는 한 사업가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툭 그 이야기를 꺼냈는데, 실행력 갑인 그분은 그 만남을 얼마 지나지 않아 성사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산속에 산다는 21세기 도사를 만나러 떠났다(알고보니 거처가 따로 있고, 종종 산속의 거처에서 지내는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는 길은 꽤 멀었다. SRT를 타고 두 시간 남짓, 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로 40분쯤 더 가서야 산 중턱의 집에 도착했다. 21세기 도사는 때마침 황토를 바른 한옥 아궁이에 불을 지피느라 밖에 나와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을 대하듯 그는 담담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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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는 에두름이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나누는 의례도, 왜 왔느냐 무엇이 궁금하냐는 확인도 없었다. 대화가 시작되었다기보다, 오래 이어지던 대화에 잠시 틈이 있었고 우리가 그 흐름에 다시 들어간 느낌에 가까웠다. 소설이 사건의 한가운데서 시작되듯, 그날의 대화도 이미 한참 진행 중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근처 식당에서 닭백숙을 먹고, 두 번에 걸쳐 세 시간가량 산책을 하며 선문답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은 21세기 도사에게서 얻은 영감 가운데 공개 가능한 세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1. What Do You Want?

정/재계 인사들을 많이 만난 그에게 물었다. 사기꾼이 많이 붙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사람을 경계하느냐고. 그는 말했다.


“What do you want?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 이게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다. A를 원하면서 B만 계속 말하다가 결국 A를 말하게 만드는 건 사기꾼이지. 그런 사람은 고수들에게 금방 들통이 나.”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크건 작건 내게 사기를 치려 했던 사람은 대체로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속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사람이었다. 반대로 처음부터 자신의 니즈를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엔 부담스러워도 알고 지내면 오히려 믿음직한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사람이 찾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아니, 금보다 더 비싸다. 그런 사람들에게 빙빙 둘러 말하는 건 결국 그들의 시간을 갉아먹는 일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투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는 고승들은 투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불투명함도 더 잘 꿰뚫어 본다고.


2. 해결책이 없다면 문제를 들추지 마라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느냐고. 그는 70%는 파악된다고 답했다. 첫인상으로 읽히는 것과 사주명리라는 데이터를 함께 보면, 그 사람의 문제 역시 어느 정도는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해결 방법이 없다면, 굳이 상대의 문제를 먼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남의 문제를 대책없이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으면서 말이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아 그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본인의 문제를 지적한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다. 해결책도 없이 문제를 들춰내는 건 악감정만 남기는, 비합리적인 행위다. 해결책이 없다면 문제를 들추지 말자. 낄끼빠빠하자.


3. 조상신이 설마 나를 굶기기야 하겠는가?

그는 요즘 말로 하면 1인 기업가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아왔다. 놀라운 건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가정을 꾸리고, 여행도 원 없이 다니며 살아왔다는 점이었다. 요즘처럼 1인 기업가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진 시대에도 그 삶은 결코 만만치 않은데, 그는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해왔을까.


나 역시 그렇고, 내 주변에도 퇴사 전에도 퇴사 후에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 많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는데, 내가 혼자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그에게는 한 번도 없었는지 궁금했다. 헤어지는 길에 물었다. 두려웠던 적은 없었냐고. 그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조상신이 설마 나를 굶기기야 하겠어?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두려웠던 적은 없어.”


그리고 이내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내 사주를 보고 해주고 싶었던 말인지 덧붙였다.


“당신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뭘 두려워해. 걱정하지 마.”


내 삶에서 가장 비과학적인 하루였다. 동시에 책에서는 얻기 어려운 인사이트를 수없이 얻은 날이기도 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무엇인지, 그리고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감각은 또 무엇인지. 적어도 그날만큼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전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지만, 세상 만물은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책에는 다 담기지 않는 현장의 인사이트를 매달 전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아래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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