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Nov 05. 2022

보람된 독(毒)


대학교를 다닐 때 그 당시 가장 핫했던 대학로 민들레영토(일종의 복합문화공간 및 카페)에서 열리는 영어회화 모임을 3년 이상 참여했다. 어느 날 신규 참여자가 모임 소감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말에 이렇게 영어공부를 3시간 가까이 할 수 있어서 보람이 넘치네요.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공감을 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도 이 모임에 오랫동안 참여하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모임에 오랫동안 나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보람을 느끼기에는 영어실력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그 당시 영어회화 모임은 3시간 정도의 영어회화 이후 저녁 뒤풀이를 하는 게 일상적이었다. 참여기간이 오래된 사람들 중 일부는 모임이 끝나기 1시간 전 정도에 도착해서 모임보다는 뒤풀이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그들에게는 '영어회화' 모임이 아니라 영어회화 '모임'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해야 할 시간에 논다는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최적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뒤풀이에 집중하는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참여자는 영어회화 모임을 영어공부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사교의 목적으로, 즉 다른 사람(주로 이성)과의 남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본인에게 익숙한 몇 안 되는 영어 휘만 반복하면서 표현이 힘든 부분은 콩글리쉬 혹은 심지어 그냥 한국어를 썼다. 그 때문에 모임의 본래 목적이었던 영어회화 능력 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단순 사교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사람마다 목적이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영어회화 모임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게 낫다. 영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영어에 다소나마 익숙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영어공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국인리의 단순 영어회화는 보람만 줄 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분도 잘 알지 않는가? 한국인끼리 영어를 써도 억양 혹은 바디랭귀지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정(情)의 민족이 한국인 아니던가.


당시에 나는 영어회화 모임이 주는 보람된 독(毒: Poison)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대놓고 딴짓하고 놀면 반성이라도 하게 된다. 그런데 공부를 가장한 무언가를 하면서 놀면 가짜 보람을 느껴 반성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보람된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독을 끊임없이 해독하려 했다. 영어회화 모임을 새롭게 공부한 어휘나 단어를 연습하는 장으로 그리고 모임 때 떠오르지 않은 영어 단어나 표현이 있다면 적어두고 나중에 공부하는 식으로 보람된 독이 아닌 보람을 얻고자 했다.


이렇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영어회화 모임'과 비슷한 보람된 독을 몇 년 전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뉴스'였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왜 그렇게 뉴스를 즐겨보는지 이해가 안 됐다. 딱딱하고 재미도 없어 보이는 내용을 매일 밤 9시에 꼬박꼬박 챙겨 보는 게 의아했다. 퇴근하고 피곤할 텐데도 불구하고 수험공부를 하는 학생이 책상 앞에 경건하게 앉듯 TV 앞에 앉아있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재밌는 스포츠 뉴스는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런데 어느덧 내가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이 되어있었다. TV 뉴스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네이버 등 다양한 채널에 노출되는 뉴스에 중독된 것이다.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어느새 뉴스 링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뉴스에 중독될까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보람된 독'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뉴스는 우리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더 잘 반응하게 설계되어 있다. 앞마당에 사과나무가 열렸다는 소식에 뒤늦게 반응해도 생존의 기회는 있지만, 앞마당에 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뒤늦게 반응하면 바로 죽음이다. 이렇게 나쁜 소식에 기민하게 반응한 사람의 자손만이 살아남았다.  자손이 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는 기본적으로 '배드 뉴스(Bad News)'이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에 반응한다. 쉬운 예로 좋은 기업에 취직한 서울대생 이야기는 뉴스가 될 수 없어도 취업에 실패한 서울대생 이야기는 뉴스가 된다. (물론 후자가 더 New 한 소식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뉴스



뉴스는 나쁜 소식에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을 정교하게 자극한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런데 뉴스는 심지어 보람도 준다. 뉴스를 보는 것 자체가 교양인의 소양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고, 뉴스 진행자의 복장과 태도 또한 이러한 인식을 강화한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희'라기보다는 '자기 계발'에 가까운 느낌을 자아내고 이는 일종의 보람을 느끼게 다. 앞서 말한 영어회화 모임의 보람된 독과 비슷한 뉘앙스의 보람 말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려고 들어갔다가 자극적인 뉴스 제목에 끌려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하루에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상관없이 TV 뉴스와 신문사는 정해진 분량을 딱 채워서 전하는 시스템인지. 그리고 정치 뉴스는 사안의 본질보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나는 그래서 어느 순간 뉴스를 끊었다. 정확히는 충동적으로 보게 되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와 정해진 분량으로 뉴스를 전하는 매체들을 끊었다. 대신 목적성에 맞게 정보를 검색하며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직접 찾아서 봤다. 정부 정책이라면 해당 기관의 사이트로 가서, 경제와 관련된 것은 전자공시 시스템을 보거나 각종 데이터를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신경 써야 하는 문제는 주변인들의 말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판단하여 더 알아보았다.(예외가 있다면 유일하게 정기 구독하는 경제잡지 The Economist다)


나만의 방식으로 뉴스라는 보람된 독을 해독하고 나서 나의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 일의 능률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집중하고자 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24시간의 삶이 체감상 약 30시간 정도로 늘어난 것 같다. 


우리에게는 또 어떠한 '보람된 독'이 있을까? 대부분이 '해로운' 독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보람된' 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보람된 독은 우리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아니 우리가 그것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니. 



P.S. 물론 뉴스를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독이 아닌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독이었지만 약으로 잘 활용하는 분들은 이 글을 살포시 무시하면 좋을 것 같다.




Photo by Artem Maltsev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