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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17. 2022

색칠과 덧칠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캡선생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실없는 농담으로 시작해 봤는데, 세상 대부분의 것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민초(민트 초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탕수육을 부먹(부어서 먹는)하는 사람과 찍먹(찍어서 먹는)하는 사람, 유선 이어폰을 고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기원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기반한 고대 페르시아 종교)가 세계를 선과 악으로 구분한 것부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 생각으로는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분법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나 가끔 요긴하게 사용할 때가 있다. '정-반-합'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라든지 혹은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할 때와 같이 말이다. 오늘의 글도 이분법적 사고에 기대에 써보고자 한다. 허술하지만 간단하게.


사회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배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칠하는 사람'과 '덧칠하는 사람'으로.


'색칠하는 사람'은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람이다.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맡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나간다. 결과가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나중에 더 나은 그림을 그리곤 한다.


'덧칠하는 사람'은 남이 그린 그림에 색을 더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관망을 한다. 초기에는 주로 타인이 그린 그림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다가 그림이 성공할 것 같으면 재빠르게 미세하게 덧칠을 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성공을 하게 되면 본인의 업적으로 치켜세운다. 물론 실패를 하면 본인이 관여한 바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말이다. 그래서 아주 애매한 정도로 덧칠을 한다. 그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게 덧칠을 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에 따라 본인의 스탠스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우리 모두 '덧칠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색칠하는 사람'이 되자는 뻔한 결론으로 흐를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측면만을 고려했을 때는 이를 결론 내리기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해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큰 조직일수록 '덧칠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고 그들이 높은 자리까지 승진할 확률이 높다. 대기업일수록 '잘하는 것'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미덕이기 때문이다. 잃을게 많은 사람일수록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은퇴 후의 행보를 보면 '색칠하는 사람'이 더 높은 확률로 성공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한정적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단순하게 생각을 해봐도 '덧칠하는 사람'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색칠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그들이 능력 있는 '색칠하는 사람'을 고용하기는 어렵다. 대기업에서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원석들이 그린 그림에 덧칠할 수 있었겠지만 은퇴 후에 그런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웬만한 재력이 아니고서야 힘들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구분했으니 이분법적으로 결론을 내면, '덧칠하는 사람'은 큰 조직에서 성공할 확률이 그리고 '색칠하는 사람'은 작은 조직 혹은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앞서 말한 대로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 느슨하고 허술한 글이니 오늘은 더더욱 잘 걸러서 읽어주었으면 한다.



P.S. 물론 '색칠하는 사람' 중에서도 무턱대고 일을 벌이기만 하고 기존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덧칠하는 사람' 중에서도 비어있는 용의 눈을 적확하게 그려 넣어 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사람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처럼 예외적인 부분에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hoto by David Pisno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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