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MBTI 테스트를 다시 해 보며 기껏해야 알파벳 하나 정도 바뀌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INTP 였던 나는 8년 사이에 ISTJ 가 되어 있었다.
MBTI 가 이렇게까지 못 믿을 만한 검사였나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ISTJ의 특징 때문이었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며, 보수적이다.
새로운 경험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남한테 관심이 없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역시 나랑 전혀 안 맞잖아??? 싶었지만 한편으로 사실은 내가 보수적이고, 새로운 환경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인데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려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틀에 박힌 생활이라는 게 꼭 나쁜 뜻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나, 루틴 무너지는 걸 제일 싫어하잖아? 늘 보는 친구들만 보는 게 좋았던 게 새로운 경험을 거부하는 경향이었던 걸까? 맞아. 사실 나는 남보다는 나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이 있지.
MBTI 가 뭐라고, 성격 유형이 뭐라고. 세상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성격 또한 ISTJ의 특징이라니..!)
MBTI를 믿거나 말거나, 새로운 결과에 동의하거나 말거나, 새로 알게 된 나의 성향 중 가장 도드라지고 크게 동의할 수 있었던 부분은 '계획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겐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꽤나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혼자” 계획을 짜는 것이다.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가망 있는 미래를 설계한다는 측면에서 계획하는 행위는 나의 엔도르핀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현실은 완벽을 추구한 나머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주간 계획에서부터, 분기별, 반기별, 향후 5년 앞을 내다보며 계획을 짜기도 한다. 물론, (정색하며 말하건대)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건 별개의 일이다. 계획하기에 열광하는 한편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많이 굼뜬 편이다 (흠흠).
이토록 계획주의자인 나이기에 달라진 MBTI의 결과에도, 대체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많은 ISTJ였지만 끝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계획하지 않은 것들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일 때도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치앙마이에 갔던 것도, 어쩌다 연락이 닿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내가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터키 역시 많은 계획 끝에 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을 정교하게 하면 할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비참한 마음이 들기 일쑤다. 내 코가 석자 이건만 이제 챙겨야 할 코가 하나 더 생긴 건 나의 현실을 더욱 현기증 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비참한 마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이상 계획을 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계획하지 않겠다 마음먹어도 분명, ‘계획 없는 삶’을 위해 또 계획표를 짜고 있을 테니까.
때로는 계획대로 풀릴 때의 짜릿함도 있지만, 틀어진 계획 틈에서도 결국 나에게 일어날 좋은 일들은 찾아올 거라 믿고, 나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디 보자, 내년까지 이제 50일도 남지 않았으니 무리하지 말고 슬슬 카운트 다운을 하며 새해 계획을 짜 볼까나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