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무담당 이대리 Nov 21. 2017

너는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야?

일의 의미#1

너는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야?


친한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그 친구가 대뜸 질문을 했다.

"너는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야?"

딱히 어떤.. 사명감이 투철한 타입도 아니고, 뭐, 종교나 소명의식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지엔 관심이 별로 없고 무슨 사회적 경제니 사회적 기업이니 하는 걸 몇 년째 붙잡고 있는 게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친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사회적 기업가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1년 넘게 다른 학교엘 다니던 내가,

영어도 잘 못하면서 MOOC인지 뭔지 해외 대학의 사회적 기업가에 대한 수업을 돈 내고 인증과정으로 듣는다며 종종 영작 과제를 봐달라고 하던 내가,

졸업은 안 하고 소셜벤처인지 뭔지에서 2년 정도 일하다 관두더니, 졸업해선 다시 규모도 작고 연봉도 더 적은 예비 사회적 기업에  취직해서 부산을 떠나 서울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내가.


친구는 조금은 공격적으로 들렸을까 뜨끔했는지, 아니면 공시생의 넋두리 섞인 메시지인지, '3년 넘게 그 키워드를 붙들고 있는데, 그 시간을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 또는 공기업 취업준비를 했으면 진즉 합격했지 않겠냐'며 내 역량이 아깝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이 얽히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대답을 망설이다, 겨우 입 밖으로 뱉은 말.

"글쎄.... 왜려나."

그러고 보면 나는 스스로 생각할 때도 딱히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있지는 않는 것 같고, 굳이 '꼭 그것만 하겠어!'하는 목적의식과 의지가 뛰어난 타입도 아닌데 왜 그럴까. 나는 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경제 분야에 자꾸만 시간을 쓰고 있는가.


특별한 희생 없이 누군가를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때를 떠올려보았다.

막 수능을 쳤었고,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준비할 때였다. 시사 관련 문제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경제지 등을 좀 보고 있었는데 그중 한겨레 21의 15주년을 맞아 나온 <한겨레 21- 창간 15돌 개편 특대 15호>에서 칼 폴라니라는 경제학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다지 경제학과 친한 사람이 아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그의 이론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거기에서 나온 몇 가지 이야기들이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야 한다. 노동, 자연, 화폐는 어떤 경우에도 상품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폐허가 될 것이다.'

'공동체/협동조합을 통한 상호부조, 시장을 통한 재화 교환, 국가를 통한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을 뼈대로 내부적 의사소통과 연대, 토론, 윤리들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착근시켜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몰랐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서로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면서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가, 함께 공존하면서 소통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시장이 (시민) 사회와 가까워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런 세상에 살고 싶었고 그래서 기꺼이 나도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칼 폴라니의 이야기 뒤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시장과 사회가 가까워진 조직의 예시로 탐스슈즈(Toms shoes)라는 기업을 소개하고 있었다. One for One운동을 통해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아르헨티나와 빈곤국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컬처쇼크를 받았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돈을 벌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소비를 할 수 있다니. 특별한 희생 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구조잖아! 사회적 기업들은 다 이렇게 멋진 일을 하는 건가?'


당시 내게 비친 사회적 기업은 대단히 멋진 곳이었고, 언젠가 꼭 그런 멋진 일을 하는 조직에 기여하고, 그 일원으로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탐스슈즈 창립 스토리에 매료된 나는 그때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으로 번 돈으로 3켤레를 사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2년 정도 그 신발을 신었고 최근에는 할인 이벤트를 통해 또 2켤레 정도 추가 구매를 하였다.)


내가 처음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렇듯 한 잡지를 보고 느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막연한 공감과 동의, 그리고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를 특별히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남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모든 기업이 결국은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를 위한 기업이어야 한다면...


내가 경영학부의 학부생이 되고 나서 탐스슈즈를 처음 접했을 때만큼 큰 컬처쇼크를 받았던 때가 두 번 정도 더 있었는데, 둘 다 책을 읽고 나서였다.


첫 번째 책을 접한 것은 경영학부 신입생으로서 첫 시험을 치를 때쯤으로, 새로 생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도서관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다 문득 딴짓을 하고 싶었고, 책장을 배회하다 한 권의 책을 꺼내 단숨에 읽었을 때였다. 그 책은 일본의 한 npo에서 활동하는 '다나카 유' 등이 쓴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이라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힘든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나의 일상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흔히 말해 차상위계층에 속한 빈곤계층 중 하나였기에(지금도 워킹푸어긴 하지만.. 차상위계층으로 지원받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나와 매우 멀게 느껴졌었는데, 그걸 깨부수는 책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올바르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누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은 꼭 생각해봐야 한다. 거기에는 웃는 아이들의 얼굴만이 아니다. 얼굴을 찌푸리는 상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돕기 위한 구호품인 담요가 지역 경제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이야기하는 사례를 보면서, 단순히 수혜자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으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고루 생각해야 올바르게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 원조 활동에 있어서는 늘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아야 하고, 되도록이면 그들 스스로 노력할 수 있게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걸 돕는 역할 정도를 하는 게 옳은 방향이지 않을까 하는 부분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NGO, NPO, 개발원조, ODA, 공정무역, MSC마크, FSC마크 같은 이름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를 계기로 시민활동이나 공정무역, 국제개발협력과 사회적 경제 전반에 대한 주요 키워드들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고 이후 국제개발협력 개론 수업 같은 걸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공정무역 커피나 초콜릿을 구매해 선물하기도 하고, 아동노동과 금 공정무역에 관련된 리포트를 써보는 등.. 돌이켜보면 개인으로서 다양한 삶의 변화가 이 책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두 번째 책은 내가 블루머그라는 독서토론클럽을 운영할 때 친구들과 함께 읽은 책이었다. 캐서린 부라는 작가의 <안나와디의 아이들>이라는 에세이 책(논픽션)이었는데, 인도 뭄바이 근처의 빈민촌인 안나와디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압둘, 아샤, 수닐, 만주, 칼루 등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 사회에 존재하는 빈부격차, 부정부패, 종교적 갈등, 가난, 아동노동 문제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넝마주이들이 쓰레기를 뒤져 모아 온 폐품들을 사들여 분류한 뒤, 다시 재활용 공장에 대량으로 넘기는 압둘은 종이부터 플라스틱, 고철까지 60종류로 나누어야 했다. 그 일은 점점 어려워졌는데, 그 이유는 ‘부자들의 쓰레기’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뒤섞여 있다거나 겉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중간에 플라스틱이 채워진 것들 등을 일일이 분해해 분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에 나오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떠올렸다. 거기서 오를랑도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장사꾼들은 광고를 통해 실제적인 필요와 아무 상관없는 구매 충동을 자극한다’고 울분을 토한다. 나는 압둘의 일이 복잡해진 것이나 오를랑도가 울분을 토하는 것의 원인에 ‘장사꾼’ 혹은 ‘부자’의 이익을 얻기 위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수요를 조장하고, 또 원가 절감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부분, 핵심적이지 않은 부분에는 더 싼 원재료가 들어가는 것들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많은 곳에서 그렇게 한다. 나는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경영학도로서의 많은 지식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너무도 적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지 그러한 기법들이 회사의 이익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만 배웠지, 그것이 인도의 가난한 폐품 중간상이나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노숙자에게 끼치는 영향들은 전혀 배우지 못했고, 떠올릴 수 조차 없었다. 1


나는 이 책을 계기로 비즈니스의 보이지 않는 다양한 영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업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 지 알게 되었다. 또 경영을 배우는 내가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나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이러한 영향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회의 구성원인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큰,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걸 좋은 쪽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기업이 단순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나 투자자뿐만 아니라 가치사슬 내에 있는 여러 '이해관계자'(종업원, 협력업체 사장, 협력업체 종업원, 지역사회, 환경운동가 등)들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 즉, '사회'를 위한 조직이 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모든 기업이 그렇게 되어야 하며 그 선구자적 조직으로서 사회적 기업이 필요한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 쓸모있는 존재라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본연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사회, 노동이 상품화되지 않는 (인간이 재화로 단순 환원되지 않는)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꼭 필요한 인류 과제가 아닐런지.....


아무튼. 위 두 책과 그 동안의 경험들은 나에게 '경영학도(또는 기획자)로서 그런 조직들을 만들고 사회 지향적인 활동(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대해 관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런 사회적 가치나 소셜 임팩트들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니 그런 것들에 대해 공부하고 확산하는 데 기여해야겠다... ' 그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고, 내 삶을 이끌어 나가는 축이 되었다.


그 두 축을 굳이 질문으로 하자면 '나를 특별히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남과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물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배웠던 경영, 회계, 재무 지식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뭐지?' 하는 물음이었고.


그 물음이 경영학도로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준 계기가 되어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결국 사회적 기업과 그 관련된 것들에 대해 공부한 것이다. 또 그것이 계기가 되어 2년 간 소셜벤처의 기획자로서 일을 했었고, 특히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 사회적 영향(소셜 임팩트)을 생각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런 평가모델을 만들려는 조직에 속해있다. 이 관심이 어디까지 이어질 진 모르겠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키워드를 탐닉하지 않을까.


내게 일의 의미는 내 삶을 살아내며 품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 중 하나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물음에 답을 찾겠다는 선택. 그것으로 나는 이 분야를 택했다.




1. 2013년 당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썼던 글에서 발췌. http://blog.daum.net/ggc_soyeong 

매거진의 이전글 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