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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Oct 24. 2021

180cm지만 여자입니다.

슬슬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영하에 가깝게 기온이 떨어졌었죠. 코끝이 차가워지면 자연스럽게 겨울 간식들이 생각나는데요. 어쩌다 붕어빵 노점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어딘가에 넣어둔 현금이 있지 않은지 온 주머니를 다 뒤져보게 됩니다.


꼬깃꼬깃한 돈을 들고 붕어빵 노점 앞에 서면 다 똑같이 생긴 붕어빵들과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색이나 팥의 위치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같은 틀에서 구워 냈으니 모두 같은 모양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죠? 


가끔 미리 구워놓은 붕어빵이 없어 새로 굽는 걸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데요. 어느 날 끼릭끼릭 돌아가는 붕어빵 틀을 보다가, 틀에 갇히는 건 붕어빵 반죽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틀에서 구워지지 않습니다. 온갖 특징을 갖고 태어나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쌍둥이라도 모든 점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틀을 만들어두는 걸까요. 평균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곧 틀이 되는 건 아닐 텐데요.


남들과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어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았던 일들도 많습니다. 워낙 눈에 띄는 키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 없었어요. 금방 들통나기 때문이었죠. 덕분에 비교적 착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원 지하철에서 원활한 호흡이 가능하다든지, 스탠딩 콘서트에서 무대가 잘 보인다든지 하는 장점을 누리기도 했어요. 


삶을 이어나갈수록 많은 분들이 제 키보다 제 내면에 집중해주십니다. 다행인 일이죠. 서로 어색할 동안엔 일부러 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분도 있었어요. 평생 얼마나 많이 들어왔겠냐면서요. 너무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죠. 지금 만나는 애인은 저보다 10cm가 작은데도 전혀 개의치 않아합니다. 품에 쏙 안길 수 있으니 이상적인 키 차이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장점도, 단점도 존재하지만 결국 저는 틀 밖의 사람으로 살아갈 겁니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런 저를 재밌어하고,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탐탁지 않아하겠죠. 저 또한 조금 웃자랐다는 이유로 다양한 대우를 받는 게 새롭기도, 불쾌하기도 할 거고요. 뭐가 됐든, 이미 자라난 키는 줄일 수 없으니 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찬찬히 찾아나갈 예정이에요. 오히려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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