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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Jan 09. 2022

<남의집 거실여행자>
나만 아는 작은 꽃 공방이 생겼다

꽃꽂이 중 화병꽃이에 도전한 이야기

예전에 꽃을 한 번 만져본 적이 있다. 꽃다발 만들기 체험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손으로 꽃을 쥐어 다발을 만들어내는데 정말로, 진짜로 쉽지 않았다. 꽃다발은 평면에 늘어놓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각적(?) 능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저렇게 꽃들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이윽고 완성된 꽃다발은 제법 예뻤지만, 내가 직접 만들었다기보다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꽃을 만지는 일은 어렵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데 이번에 남의집 거실여행자 활동을 하게 되면서, 어떤 남의집을 여행할까 찾아보다가 <나만 아는 꽃 공방>을 발견하게 되었다. 



은평구의 작은 꽃 작업실 <진심꽃방>에서 플로리스트와 함께 꽃을 만지며 힐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의집이었다.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만들던 시간이 떠올랐고, 제법 힘들었지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에 치유를 받았던 기억이 함께 소환됐다. 예쁜 꽃들을 계속 만지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이번 남의집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만 아는 꽃 공방으로 떠나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정말 멀어 가는 데 힘들었지만, 남의집 여행을 하는 동안 오길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은평구에 있는 진심꽃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늑한 공간이 펼쳐져있었다. 보통 잡동사니로 가득한 꽃집들과는 다르게, 작은 꽃 냉장고와 서랍장 몇 개, 테이블 몇 개가 집기의 다였다. 서랍장과 테이블 위에는 예쁜 꽃다발이나 리스 소품들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고.


단 두 명만 초대해서 진행하는 남의집이었다보니, 테이블에 두 명 분의 꽃꽂이 재료가 놓여 있었다. 신청할 때 예전에 꽃다발 만들기를 해 본적이 있다고 적었었는데, 그걸 배려해주셨다. 오늘의 꽂꽂이는 작은 화병에 꽂는 화병꽂이! 플로랄 폼에 꽂는 것보다는 조금 고난이도라고 하셨다. 어렵다고 하는데 왜 더 기대가 될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자리를 자세히 보니까 글쎄, 편지가 있었다! 오늘 오는 두 사람을 위한 엽서였는데, 가벼운 인사와 오늘의 남의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적혀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편지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정성들여 눌러 쓴 글씨가 담긴 편지를 너무 오래간만에 받기도 했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잊지 못해...


오늘 사용할 꽃들에 대한 설명들을 하나씩 해 주셨다. 꽃들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건 '그린 소재'라고 하셨다. 유칼립투스, 왁스플라워, 루스커스 등이 있었다. 장미들도 다 이름이 있었다. 사진에 들고 계신 건 아미초라는 꽃. 파란색의 하늘하늘한 델피늄도 아름다웠고, 큼지막한 거베라와 튤립들도 예뻤다.


꽃 설명이 끝난 후, 소재들을 화병에 꽂기 시작했다. 그린 소재 먼저 테두리에 갈 수 있도록 다듬어 꽂았다. 유칼립투스가 가장 많길래 그걸 다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엄청나게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와서 놀랐다. 코알라들... 먹을 때 힘들겠는걸? 물에 잠기는 부분들의 잎을 제거하고, 길이를 적당하게 잘라 꽂았다. 화병이 동그란 모양이라 줄기들이 계속 굴러다녔다. 그래도 끈기를 갖고 꾸준히 꽂았다. 화병 밑에 도자기를 만들 때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받침대가 있어서 여러 방면에서 바라보면서 꽃을 꽂기 좋았다.


그린 소재를 다 꽂은 후에는 큼지막한 꽃들을 꽂았다. 장미, 거베라를 다듬어 꽂고 튤립을 조금 길게 꽂았더니 조화로운 모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델피늄과 아미초를 꽂아서 허전한 부분들을 채워주었더니 더 풍성한 화병이 되었다. 전체적인 색깔도 선생님이 미리 잘 골라 놓아 주셔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산당화 나무를 하나 꽂아서 완성!


완성 직후의 모습. 다듬은 줄기와 잎들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어서 지저분하다. 그래도 예쁘다! 화병만 남겨놓고 나머지들을 주섬주섬 치웠다.


예쁘게 배열을 해서 찍으니 더 예쁜 꽃. 함께 체험하신 분은 키가 좀 작고 전체적으로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셨는데, 나는 진짜 고민없이 확확 호쾌하게 꽂아서인지 좀 야생의 느낌이 나는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꽂꽃이에서도 성격이 나오는구나...


꽃을 다 만든 후에는 차를 내주셨다. 메리골드 차라고. 달콤한 향기가 좋았다. 차를 마시면서 함께 꽃꽂이를 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얘기를 해 주시는 분이었다. 남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이렇게나 따뜻하구나, 생각했다.


완성된 화병은 선생님이 잘 포장해주셨다. 흔들리지 않게 종이를 깔고 화병을 넣어 주셨다. 집에 와서 물을 더 담고, 회사로 가져가 자리에 두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칭찬해주셔서 어깨를 매우 들썩거렸다.




두 시간을 행복으로 가득 채웠다. 꽃을 만지는 일은 역시나 어렵지만 즐겁구나, 하고 확신했다. 꽃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화병을 가지고 와서 물을 갈아줄 때마다 다시 꽃을 다듬으니 그 기쁨이 더 오래 갔다. 비록 사는 곳에서는 조금 멀지만, 나만 아는 꽃 공방이 생겨서 기쁘다. 남의집에 등록되어 있는 이름은 <나만 아는 꽃 공방>이지만, 나만 알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꽃을 만지는 이 기쁨을 다 알았으면 좋겠다.






이 콘텐츠는 남의집 서포터즈 거실여행자로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남의집>은, 좋아하는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각자의 공간으로 소규모의 사람들을 초대해 취향껏 만든 프로그램을 즐기는 방식이에요! 첫 방문이었지만, 너무 즐거웠습니다. 다음 거실여행자 활동이 벌써 기대돼요.


#남의집 #남의집프로젝트 #남의집거실여행자 #취향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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