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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20. 2023

삶을 닮은 가방

 늦가을은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상쾌함을 품고 있는 찬 공기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씻어주는 느낌이다. 글을 쓰다 머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을 했다. 그럴 때면 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범백을 가지고 나간다. 핸드폰과 지갑을 비롯한 간단한 소지품을 넣기 좋다. 간소한 옷차림을 즐기게 되면서 작은 가방을 선호하는 취향이 생겼다. 질 좋은 베지터블 레더나 풀그레인 레더로 만든 브리프케이스를 고집했던 내가 참 많이 변했다. 지금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이 제일 좋다. 멋진 것보다 편한 것을 선호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람도 취향도 계절처럼 변한다.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범백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가벼운 옷차림과 잘 어울리는 데다 야외활동을 할 때 가지고 다니면 정말 편하다. 특히 여행을 갈 때면 늘 범백을 챙기게 된다. 보조가방으로 사용해도 좋고 꼭 필요한 소지품을 챙길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해진다. 가방 크기는 작지만 필요한 물건은 다 들어간다. 메인 포켓은 핸드폰과 카드지갑을 보관하고 서브 포켓에 초콜릿 같은 간식을 넣는다. 외부지퍼를 열면 볼펜과 작은 사이즈의 티슈 그리고 마스크도 들어있다. 내부의 히든포켓 속에는 비상금 목적으로 만 원짜리 세 장을 꽂아놨다. 범백만 들고나가면 어디를 가도 불안할 일이 없다.


 가방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닮는다. 자주 쓰는 물건은 그 사람의 삶을 나타낸다. 가방은 물건과 함께 사람의 생활과 일상까지 담는 역할을 한다. 회사원 시절 나는 오로비앙코의 루퍼스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다녔다. 리몬타 나일론으로 만든 네이비 컬러의 서류가방은 정말 예뻤지만 가방 속은 간소하다 못해 썰렁했다. 내용물은 지하철에서 읽는 책 한 권과 접이식 3단 우산이 전부였다. 30분 거리의 회사를 출퇴근하는 내 루틴에 최적화된 구성이었다. 내근직이라 출장이나 외근과 거리가 멀었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브리프케이스 속의 단출한 조합은 늘 똑같았다.


 삶의 변화는 사용하는 물건의 변화를 가져온다.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슈트를 입고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다닐 일이 사라졌다. 앉아 있는 시간이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길어진 만큼 편한 옷을 선호하게 됐다. 후드티와 티셔츠를 즐겨 입게 되면서 나는 클래식패션을 버리고 에슬레저룩을 선택했다. 구두는 전부 당근 했고 옷장 속 슈트는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멋진 브리프케이스 컬렉션은 중고장터를 거쳐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달라진 생활에 맞게 패션도 변한다. 요새는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에서 구매한 사코슈와 범백을 사용하고 있다. 간편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내게 정말 좋은 가방이다.


 도서관 갈 때는 맨해튼포티지의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메고 다닌다. 특별할 것 없는 정말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대출한 책 몇 권을 넣고 다니기에 딱 좋다. 비싼 서류가방을 들고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정말 좋은 물건은 사람의 생활에 어울리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것이 제일이다. 애착은 화려함이 아니라 편안함에 깃드는 감정이다. 자주 사용하고 손이 가는 물건은 단출하고 평범하다. 꼭 친구 같은 느낌이다. 언제 봐도 좋은 오래된 친구처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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