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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22. 2023

발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

 비가 내리고 한동안 춥더니 오늘은 날씨가 완전히 풀렸다. 점심약속이 있는 날이라 코트를 입을까 싶었는데 니트면 충분할 것 같았다. 네이비 컬러의 니트에 얇은 패딩조끼 그리고 와이드슬랙스를 골랐다. 신발장을 열고 뉴발란스를 꺼내 신으려는데 닥터마틴에 눈길이 닿았다. 작년 겨울에 샀던 모노 더비였다. 구둣주걱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신어봤는데 여전히 불편했다. 예전에는 닥터마틴을 종류 별로 신고 다녔는데 지금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무거운 데다 미드솔이 딱딱해서 착용감이 엉망이었다. 작년만 해도 괜찮았는데 올해는 구두나 부츠를 애용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결국 뉴발란스로 갈아 신었다.


 반스 어센틱이나 올스타 컨버스도 비슷한 이유로 처분했던 기억이 난다. 생고무 재질의 딱딱한 스니커즈들은 오래 걷다 보면 발에 피로감이 쉽게 누적된다. 하루 평균 8 천보 이상 걷는 나에게 최고의 신발은 발이 편한 신발이다. 브랜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그리고 뉴발란스 뭐든 다 좋다. 발만 편하면 그만이다. 디자인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단색이 제일 좋지만 아니라도 큰 상관은 없다. 가볍고 편한 신발은 다 괜찮다. 호카오네오네도 처음에는 투박한 디자인이 별로였지만 올해 직접 신어 보고 나서 마음을 바꿨다. 나는 주로 쿠션이 들어간 러닝화를 즐겨 신는다. 그래서 신발장에 구두는 거의 없다.


  남아있는 구두는 검은색 옥스퍼드화  켤레뿐이다. 경조사가 있을 때만 꺼내는 구두다. 구두는 불편한 신발이다. 자기 발에 맞는 최적화된 디자인과 브랜드를 찾으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비싼 구두는 비싼 값을 한다. 가격으로 나뉘는 브랜드 등급은 생각이상으로 정확하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저렴한 구두를 신다가 헤리티지 브랜드의 구두를 신으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있다. 알든이나 크로켓존스 아니면 버윅만 신어도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러닝화와 워킹화와 비교하면 구두는 전근대적인 가죽신에 불과하다.   전에 영국산 핸드메이드 구두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만듦새가 정말 훌륭했고 착화감도 좋았지만 운동화보다 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발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좋은 신발은 발이 편한 신발이다. 아웃렛에서 특가로 단돈 4만 원에 샀던 뉴발란스 576을 이길만한 구두는 없었다. 애초에 신발이라는 카테고리만 같을 뿐 동일선 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구두는 남자가 소장할 수 있는 패션아이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다. 좋은 구두는 신고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와 아우라를 만든다. 하지만 관점이 달라지면 생각도 변한다. 심미성보다 편의성을 중시하는 옷 입기를 추구하면서 구두는 나와 멀어져 버렸다. 좀 더 편한 구두를 찾다가 콜한의 클리퍼로 갈아탄 적이 있다. 당시 나이키와 협력관계였던 콜한은 구두에 러닝화 아웃솔을 적용한 클리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살면서 신어본 구두 중에서 가장 발이 편했다.


 회사원 시절 거의 매일 콜한의 클리퍼를 신었다. 그러다 좀 더 깔끔한 디자인으로 나온 커먼프로젝트의 클리퍼를 만났다. 플레인 토 스타일의 더비였는데 가격이 상당했다. 다행히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시한 슈스토리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즐겨 신은 구두였다. 그 후로 구두를 구입한 적은 없다. 지금까지 쭉 운동화만 고집하고 있다. 클래식 패션을 좋아하던 시절 다양한 구두브랜드를 접했지만 발이 불편하면 맘이 가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스타일도 달라지고 트렌드도 변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고집은 그대로인 것 같다. 발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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