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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17. 2023

패딩의 역사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유행도 돌고 돈다. 인간의 역사는 주기적인 반복이 만들어내는 데칼코마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유행했던 노스페이스 눕시 패딩이 요새 인기를 끌고 있다. 원색의 노스페이스 눕시를 입은 신호등 전대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격은 2000년대 초반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학창 시절 노스페이스 패딩은 진짜 등골브레이커라는 이명으로 불릴만했다. 작년부터 2000년대 Y2K 패션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초등학생이었던 세기말의 기억이 아른거린다. 배달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하는 형들이 추울 때 입었던 푸퍼 패딩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놀랬다. 이러다 더플코트와 바람머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패딩은 운동화와 함께 유행의 양대산맥이나 마찬가지였다. 작년부터 유행했던 푸퍼는 90년대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복으로 입던 옷이다. 오리털잠바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푸퍼는 큰 특색이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대한민국을 점령했다. 2010년대가 오기 전까지 노스페이스는 패딩의 대명사였다. 당시 생소했던 기능성을 내세운 후발주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패딩의 시대가 열렸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패딩은 학창 시절 서열과 등급이 정해져 있었다. 나이키 sb덩크에 노페 눕시나 아콘을 입으면 독보적인 인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패션계에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이 등장하면서 노스페이스는 왕좌를 내줬다.


 프리미엄 패딩의 시초 몽클레어가 상륙하면서 패딩의 양극화가 시작됐다. 몽클레어 패딩을 착용한 연예인들의 공항사진이 나돌면서 브랜드의 인기는 수직상승했다. 당시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불황 때문에 소비가 양극화된 점도 한 몫했다. 100만 원을 넘는 프리미엄 패딩이 처음 상륙했을 때만 해도 사치품이라는 비난이 많았다.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언론 보도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패션은 본질적으로 소비여력에 따라 등급이 나뉠 수밖에 없다. 남다른 취향을 자랑하면서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은 소비자들은 널려있었다. 그러다 캐나다구스가 등장하면서 패딩 시장의 양극화는 정점을 찍었다. 다만 캐나다구스의 인기는 오래가지는 않았다. 온갖 도메스틱 브랜드가 똑같이 찍어내면서 열기가 급속하게 식어버렸다. 정품을 입어도 전부 가품 같았기 때문이다.


 패딩에 대한 1,20대의 수요가 워낙 막강하다 보니 기업들은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인기 있는 아이돌과 연예인들이 패딩 CF를 점령했다. K2나 아이더 그리고 네파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해마다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패딩 디자인은 매년 달라졌다. 얇은 경량패딩이 인기를 끌면 다음 해는 모자에 퍼가 달린 파카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롱패딩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추운 날씨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선수들이 입던 벤치파카가 롱패딩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은 강렬했다. 꼭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가오나시 같았다. 비슷한 시기 유행했던 남자들의 모나미룩처럼 인상적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파타고니아 패딩을 즐겨 입었다. 회사 근처에 수입의류를 파는 편집샵이 있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편집샵이지 사실은 해외 아웃렛에서 싸게 나온 제품을 떼다 파는 곳이었다. 10  중반대의 가격으로 파타고니아 패딩을   있었다. 거리에서 같은 패딩을 입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서 좋았다. 가격이 저렴해서 여러 벌을 구매해서 애용했다. 그러던 어느  갑자기 파타고니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수요가 폭등하다 보니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버렸다. 13,4 원에  입던 패딩을   가까운 가격을 주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와 파타고니아의 인연은 끝났다. 이때 크게 데인 나는 유행할  없는 아웃도어 브랜드로 컬럼비아를 선택했다.  년이 지났지만 컬럼비아는 여전히 유행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다행이다.


 유행이 시작되면 같은 브랜드의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마다 물결을 이룬다. 코로나 시즌에는 패딩보다 파타고니아의 레트로 플리스가 큰 인기였다. 해외 아웃렛의 파타고니아 제품을 한국인들이 모조리 쓸어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행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남들이 입으면 나도 입어야 한다는 악착같은 마인드는 집념에 가깝다. 그러나 유행이 끝나면 열정적인 집념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수많은 브랜드에서 우후죽순처럼 레트로플리스 카피를 만들어내자마자 인기는 수직하락했다. 유행의 시작은 다르지만 끝은 늘 똑같다. 여기저기서 베껴서 찍어내는 순간 백화점 야외매대에 특가세일로 풀리는 그때 인기가 뚝 떨어진다. 돌아온 노스페이스의 유행은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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