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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24. 2023

면도의 세계

취향과 로망이 만나는 지점

 사흘 만에 면도를 했다. 전기면도기로 5초면 끝이다. 사용하고 바로 헤드를 열어서 물로 세척해 준다. 보통 3일에 한 번 면도를 한다. 나는 수염이 거의 없다. 턱과 코 밑에 나는 몇 가닥이 전부니까 아예 없다고 해도 별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체모가 거의 없는 편에 속한다. 팔다리에 털이 하나도 없다. 제모했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 심지어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굴도 모공 하나 없는 피부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예외다. 그리고 눈썹도 거의 없다. 아주 연해서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예전에는 종종 눈썹을 그리고 다녔다. 물론 나중에는 그만둬버렸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체모 없는 인간으로 30 넘게 살아온 만큼 나는 면도와는 인연이 . 전기면도기를 처음  것도 서른 살이 지나서였다. 그전에는 어쩌다    일회용 면도기를 사용했다. 20 시절에는 지금보다 수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기면도기로 바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편해 보였다. 2 전쯤 필립스 제품을 사서  쓰고 있다. 면도하고 헤드 부분을 열어서 흐르는 물로 세척하면 끝이다. SSG닷컴에서 8  주고 구매했다. 충전과 세척 기능이 내장된 전용 독이 딸린 면도기 가격은 40 원을 훌쩍 넘는다.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멋진 디자인이지만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면도는 남자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활동이다. 군대의 보급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물건이 면도기와 면도날이다. 1,2차 세계대전사를 보면 면도하는 모습의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총알이 오고 가는 생사의 기로에서도 면도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처럼 수염이 거의 나지 않는 사람은 예외다. 훈련소에서도 나는 보급받은 면도기를 동기에게 나눠줬다. 면도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만 면도기 특유의 디자인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전기면도기를 몰래 만져봤을 때 꼭 신기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솜털 밖에 안 난 턱에 이리저리 대보면서 면도하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점이 미묘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다. 면도기나 슈트 그리고 자동차까지. 남자가 동경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아버지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브라운이나 필립스의 전기면도기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라이트세이버를 닮았다. 인체공학적인 유선형 디자인에 금속 소재를 사용해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준다.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좋은 그립감과 알맞은 무게감도 매력적이다. 곡선으로 다듬어진 매끈한 옆면은 스포츠카를 닮았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은 디자인적인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외관에서 오는 간결함. 남자의 눈은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안정감을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시계와 차 그리고 면도기까지. 지나치게 화려하고 과장된 이미지보다 묵직한 아우라를 선호한다.


 용도는 수염을 깎는 것뿐이지만 디자인은 면도기의 차별화된 세일즈포인트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면도기를 구매하는 기준은 기능보다 취향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건축가인 제일 친한 친구는 질레트 랩스의 히티드레이저를 애용한다. 버튼을 누르면 헤드 부분이 빨갛게 빛나면서 면도날의 온도가 올라간다. 온열 기능이 들어간 제품이다. 친구는 늘 전기면도기를 쓰다가 부드러운 습식면도를 시작하면서 질레트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습식면도의 매력을 늘어놓는 친구를 보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도의 세계는 내게는 여전히 가깝지만 먼 나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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