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연말세일이 시작됐다. 때마침 편하게 신을 스니커즈가 한 켤레 필요했다. 온라인 샵을 둘러보다 푸마의 스웨이드가 눈에 띄었다. 고등학생 시절 한창 신고 다녔던 신발이었다. 푸마의 스테디셀러 라인이라 그런지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나이키의 포스나 덩크 그리고 코르테즈처럼 보자마자 추억이 생각났다. 신발 색깔은 네이비를 골랐다. 빨간색을 사고 싶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코디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물 빠진 머스터드 색깔도 예뻐 보였지만 결국 네이비로 결정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푸마의 스니커즈를 애용했다. 스프리스나 에버라스트처럼 저렴한 편이었고 특유의 유선형 디자인을 좋아했다. 물론 당시 인기가 많았던 스피드캣 시리즈는 비싸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부츠컷에 스피드캣을 신는 것이 남자 패션의 완성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소가 절로 나오는 옷차림이지만 거의 20년 전에는 그런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푸마는 스피드캣을 제외하면 다른 신발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스웨이드도 컨버스 올스타나 반스 어센틱에 비하면 2군 취급이었다. 그래서 푸마는 유난히 세일을 자주 했다.
연말을 앞두고 ABC마트에서 크게 할인행사를 하면 푸마 운동화를 한 켤레씩 장만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하면 여전히 푸마는 저렴한 편이다. 두 브랜드에 비하면 원가절감도 덜한 데다 만듦새도 좋다. 발매가도 낮은 편인데 세일까지 자주 하는 편이다. 푸마 스웨이드를 거의 20년 전에 5만 원 주고 샀던 것 같은데 오늘은 3만 원대에 구입했다. 옷값도 물가 따라 정말 많이 올랐는데 푸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브랜드 포지셔닝 자체를 고급화보다 보급화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푸마도 고급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시절이 있다. 2000년대 초반 과거 프리미엄 라인으로 루돌프 다즐러를 생산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동적인 푸마 로고가 꼭 카멜레온 같이 우스꽝스러웠던 라인이다.
심기일전한 푸마는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인정받는 미하라 야스히로 콜라보 라인을 선보였고 대박을 쳤다. 당시 인기 있는 신발의 척도는 가품이 얼마나 성행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옥션과 인터파크에는 미하라 야스히로 가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하이탑 슈즈 광풍이 오기 전까지 푸마의 미하라 라인은 큰 인기를 끌었다. 직선과 곡선을 과감하게 사용했던 미하라 시리즈는 한 때 내 드림슈즈였다.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손에 넣을 일은 없었지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푸마의 디자인철학은 유려한 곡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만든 성공의 공식을 거부한 고집이 느껴져서 푸마의 디자인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다.
디자인은 한 시대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작은 역사다. 특히 자동차나 신발 같은 소비재는 취향과 욕구를 반영하는 만큼 시대성이 크게 두드러진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푸마 운동화들을 검색해 봤다. 스포츠카를 연상하게 만드는 날렵한 디자인을 보자마자 2000년대가 떠올랐다. 모든 역사는 반복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패션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어쩌면 기억 속에 남은 푸마의 전성기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던 레트로 무드의 유행은 Y2K 패션으로 이어졌다. 트루릴리전 부츠컷에 푸마 페라리 스피드캣을 입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