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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10. 2024

사람들과 어울려도 당신이 외로운 이유

사교성에 집착하면 개성은 사라진다

 대인관계는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살면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희로애락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함께 있을 때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준다.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살아남는 법도 익히게 된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관계는 집단을 움직이고 사회를 굴러가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인간관계는 곧 사회적 권력이다. 다들 좋은 인맥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잘 사귀라는 말을 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틀렸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진짜 힘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나 똑같다. 인맥의 힘을 실감할 만한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확장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모임에 참여하고 집단에 가입하면서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고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계산이 존재한다. 감정이나 시간을 쏟은 만큼 호의와 배려가 돌아온다. 예외도 있지만 드문 편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관계가 확장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늘다 보면 나에게 써야 할 시간과 열정마저 끌어다 쓰게 된다.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인연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인맥은 사회적 재산이다.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손익을 계산해 보고 편익을 따지면서 계속 끌고 간다. 그러는 사이에 내면의 여유는 점점 더 줄어든다. 모임과 만남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지만 외로움과 회의감은 점점 더 커진다. 그럴수록 인맥관리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사람으로 인해 얻은 스트레스를 새로운 사람으로 푸는 괴랄한 방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시대다.


 한국인들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사람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관계를 마치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처럼 여긴다. 인맥이 곧 권력이라는 환상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익을 나눠먹는 영향력 있는 운명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친목으로 시작해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는 모임이나 단체는 수두룩하다. 지속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큼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이익을 얻기 위해 참는다. 인간관계는 결국 더 편하게 잘 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다. 서로를 이용하고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


 진심이 결여된 관계일수록 피로감이나 외로움을 쉽게 느끼게 된다. 스스로를 포장하고 화려한 가면을 쓰고 만나는 관계는 진심이나 애정이 없는 허상일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즐거움을 공유하지만 본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만들고 연기하느라 나다움을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진심을 드러내면 뒤에서 소문이 돌고 감정을 주고받으면 루머가 들러붙는다. 편익을 목적으로 유지하는 가짜 인간관계는 언제나 피로감과 탈력감을 동반한다.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힘들다고 괴로움을 호소하면사도 정작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괴로움보다 외로움을 더 두려워한다.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대열에 끼지 못하면 박탈감을 느낀다. 연기를 하느라 나다움을 잃어버리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다수에 속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마음의 내구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인간관계의 환상을 신봉하고 인맥의 힘을 신앙처럼 받드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낮다. 자존감은 내면의 면역력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자존감이 하락하고 있다는 신호다.


 사교성이 좋고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혼자일 때조차 SNS를 통해서 외부에 자신을 알리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수록 삶은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영향을 받는다. 유명인이나 공인들은 악플이나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정신질환을 호소한다. 인연이 고통이라는 불교의 오래된 격언처럼 내 그릇의 크기를 넘어선 대인관계는 나를 속에서부터 망가뜨린다. 원만하고 건강한 대인관계의 시작은 나를 성찰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자존감과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한국 출판계에서 수십 년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한국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좋은 인맥이 성공과 행복의 척도라고 믿는다. 이러한 왜곡된 사회적 통념이 연고주의와 인맥만능주의를 만들어냈다.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너비가 아니라 깊이다. 머리수가 아니라 진심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다. 가지 많은 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지만 태풍이 불면 제일 먼저 무너진다. 인맥에 집착하면서 인간관계를 늘리는 행위는 수집이나 마찬가지다. 내면에 컬렉션이 늘어나면 정작 내 자아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남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신념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다. 그래야 험한 풍파를 견디고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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