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와 자괴감의 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험한 욕구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자기 파괴욕구다. 크기가 작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의식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급증하면 파괴욕구는 심리적인 자해로 이어진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자괴감과 자기혐오가 번갈아 찾아온다. 과거의 일을 자책하거나 후회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하게 되고 몸과 마음은 서서히 망가진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데 자주 피로감을 느끼고 쉽게 지친다. 사람들이 아는 내 모습과 나만 아는 추한 내면을 비교하다 보면 우울감과 공허감이 찾아온다.
약물을 끊고 지내던 단약자가 사소한 계기로 다시 중독자가 되는 것처럼 자기 파괴행동도 재발한다. 심리적인 자해를 계속되다 보면 자기애가 망가진다. 자기애는 나를 소중한 존재로 인지하게 만드는 정서적인 안전망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면 파괴행동의 강도는 상승한다. 알코올을 비롯한 약물이나 일탈을 동반하는 행위 중독에 취약해지기 쉽다. 본인의 평판과 상반된 이중생활을 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중독이나 일탈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에 불과하다. 후회와 죄의식이 부정적인 감정만 배가시킬 뿐이다.
처음에는 자극에 눈을 돌리게 된다. 괴로움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강한 자극제를 찾는다. 그러다 자극으로도 손쓸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하면 이제는 마취제에 손을 댄다. 자신을 한계까지 혹사시켜서 지치게 만든다. 시간을 빈틈없이 사용하면서 쉴 틈 없이 산다. 타인의 눈에는 워커홀릭이나 갓생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SNS에 올라오는 삶과 내면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정제를 사용한다. 부정적인 것들을 끊어내고 주변환경을 정리한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상황이 달라져도 자신은 여전히 그대로다. 극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자기 파괴행동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면과 외면을 가꾸고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성실하게 일한다. 좋은 대인관계를 맺으려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쁘게 산다. 하지만 심리적인 자해가 만드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열정을 발휘하면서 소모한 에너지가 바닥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탈진상태가 된다. 체력이 떨어지면 면역력도 하락한다. 자존감은 마음의 면역력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취약해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을 빠르게 잠식한다. 그러다 보면 악습이나 다름없는 심리적인 자해를 반복하게 된다.
타인이 보는 모습과 내가 아는 나에 대한 괴리감이 클수록 자기 파괴 행동의 빈도는 증가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반대로 말하면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남과 나의 관계가 민감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미지를 중요시하고 관심이나 시선에 목마른 사람 역시 자기 파괴욕구가 강하다. 심리적 자해를 반복하는 이들은 혼자 있는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혼자 앓는다. 극과 극을 오가면서 내면의 체력이 바닥나버린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겨우 버티고 서있는 위태로운 상태가 된다.
자기 파괴행동의 원인은 다양하다.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실망감이나 다년간 누적된 우울감이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실패로 인해 발생한 실망감이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요 원인을 꼽는다면 결국 사람이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가족 혹은 혈육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서 받은 사랑은 내면의 골격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 내면 깊은 곳에 금이 간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워지고 애써 만들어도 자주 새어나간다.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점점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리적 자해가 만드는 악순환은 쉽게 끊을 수 없는 아주 단단한 고리다. 자기혐오는 자존감을 갉아먹고 낮은 자존감은 자기애를 망가뜨린다.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으므로 외로움과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과거의 PSTD나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상처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극복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가치관이나 관점이 달라질 만큼 큰 변화를 필요로 한다.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서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은 소년만화 속 주인공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해가 동반하는 통증을 자주 느끼다 보면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감마저 몰려온다.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자기 파괴 행동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늪이다. 그래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사람이나 행위가 주는 즐거움에 탐닉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자극은 일시적이다.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 바닷물과 같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나를 대하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큰 변화는 늘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기혐오를 버리고 자기애를 갖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미워하는 마음만큼은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현재를 산다. 미래는 지금의 내가 새로 만들 수 있다. 과거의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 잘못은 현재를 살면서 반성하고 속죄할 수 있다.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지나간 시간에 발목 잡힐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관성이 생긴다. 그래서 심리적인 자해는 자주 재발한다. 하지만 삶의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 역시 자각하다 보면 관성이 생긴다. 더 많이 반복하는 쪽이 이긴다. 오래된 버릇은 새로운 습관으로 덮을 수 있다.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이나 사건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받으면서 점점 낡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