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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5. 2024

손톱 물어뜯기

 아침햇살이 유난히 화창한 날이다. 아침을 먹고 청소를 끝냈다. 화분에 물을 주고 모종삽으로 흙을 고르게 잘 섞었다. 날이 추워서 표면의 습기가 얼었던 모양이다. 일을 끝내고 손을 씻었다. 손톱 시이에 들어간 흙을 빼냈다. 얼마 전에 잘랐는데 금세 자랐다. 소파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늘 바짝 깎는다. 그래서 캔을 딸 때 젓가락이나 카드 같은 도구를 이용한다. 손톱이 짧아서 손가락 끝에 캔꼭지가 걸리지 않는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려고 바짝 깎게 됐는데 이제 익숙해졌다. 손 끝에 하얀 초승달이 달리면 곧바로 손톱깎이를 꺼낸다.


 초등학교 3학년. 그때 처음 손톱을 물어뜯었다. 원인은 기억나지 않는다.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영향을 준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공부하거나 책 읽을 때 나는 늘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손톱을 물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만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니로 손톱 끝을 뜯어냈다. 꼭 벌레가 파먹은 이파리 것처럼 손끝이 엉망이 됐다. 주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남중남고를 다녔다. 그 시절 나를 비롯한 남자들은 대체로 디테일에 무심했다. 머리모양이나 교복 바지통에 신경 쓸 뿐 손톱에 눈길을 던지는 애들은 없었다.


 군데군데 뜯겨나간 손톱은 며칠만 지나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멀쩡해지자마자 다시 물어뜯었다. 치아로 힘을 줘서 손톱을 누르면 하얗게 뜨면서 손톱 끝이 갈라진다. 그대로 앞니로 물어서 당기거나 손가락으로 잡아 뜯었다.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은 신체의 일부지만 주기적으로 몸에서 잘려나간다. 떨어져 나갈 때 통증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극적인 의미의 자해였던 것은 아닐까?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고통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나를 망가뜨린다는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원리는 동일하다. 몸에 부담을 주는 걸 알면서 저지르는 일은 다 비슷하다. 서른 살이 되면서 손톱을 물어뜯은 지 햇수로 20년이 됐다. 여든까지 갈지도 모르는 오래된 버릇이었다. 하지만 그만뒀다. 손톱을 짧게 자르게 되면서 몸에 익은 버릇이 사라졌다. 고쳤다는 말 대신 사라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어제까지 무의식적으로 20년간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다. 심경의 변화나 명확한 계기는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오래도록 이어지다 홀연히 사라졌다.

 소나기처럼 시작됐다가 비가 멎는 것처럼 끝났다.

예측하고 예상하려 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뿐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손톱을 물어뜯은 적은 없다. 늘 손톱을 짧게 바짝 자르게 됐다. 손톱을 물고 싶어도 물 수가 없다. 불안이나 걱정은 여전히 괴롭지만 이제는 다른 길을 찾는다. 탁월한 해법은 없지만 적어도 어떤 방법이든 간에 손톱을 물어뜯는 것보다는 낫다.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고통을 이겨내는 일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정답은 몰라도 오답은 안다.


 손톱을 전보다 짧게 잘랐다. 겨울인데도 전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손톱은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한다. 한 주에 한 번씩 깎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간다. 벌써 12월 중순이다. 곧 한 해가 저문다.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감보다 지는 해의 아쉬움이 더 익숙한 나이가 됐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바람을 타고 눈발이 잠시 날리다 그쳤다. 옅은 회색빛 눈구름은 물러가고 하늘이 보였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 끝에 닿은 따스한 햇살이 꼭 봄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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