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세일기간이라 살만한 물건이 없나 앱을 둘러보고 있었다. 작년 봄에 사서 잘 쓰고 다니는 브룩스브라더스 볼캡이 40% 세일 중이었다. 쿠폰이랑 카드제휴할인까지 더하면 한 개 값에 두 개를 살 수 있어서 눈이 돌아갔다. 좋아하는 올리브, 그린 컬러 볼캡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싸게 샀다는 희열감은 성취감과 비슷하다. 매장에서 정가에 산 사람이나 세일 전에 구매한 이용자들보다 이득을 봤다는 뿌듯함은 짜릿함으로 이어졌다. 결제를 마치고 돈 벌었다는 생각에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이내 차분함이 찾아왔다.
충동에서 비롯되는 성취감은 대체로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충동구매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싸다고 모자를 두 개나 사는 것부터 이상했다. 옷걸이에 걸린 브룩스브라더스 모자를 써봤다. 같은 디자인을 굳이 세 개씩이나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뒤늦게 풀렸던 이성의 끈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발매가보다 싸다고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을 사는 것도 심리적인 허기 같다. 마음이 공허할 때 입속에 음식을 밀어 넣는 사람처럼 결제버튼을 눌렀다. 성냥팔이 소녀가 태우는 성냥은 온기와 불빛을 가져다주지만 금세 사라진다. 충동적인 소비도 비슷하다.
물건을 살 때 느끼는 기쁨은 짧다. 싸게 샀다는 만족감은 얼마가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는 것과 싸다고 무턱대고 사는 것은 다르다. 정말 갖고 싶은 모자도 아니었고 당장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그냥 싸게 사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즉각적인 행복을 얻고 싶어서 충동구매를 선택했다. 무신사 앱을 눌러서 결제를 취소했다. 사소한 소비일수록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작은 물건을 사면서 얻는 일시적인 만족감은 성냥을 태우는 것처럼 공허하다. 허전함은 공허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빈 내면을 채우려고 할수록 더 공허해질 뿐이다.
친구 하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퇴근길에 집 근처 편의점을 방문했다. 늘 맥주 한 두 캔을 사고 과자 같은 안주거리를 담아서 계산했다. 막상 들어와서 씻고 나오면 곧바로 곯아떨어져서 전날에 산 물건은 매번 다음날까지 방바닥 위에 방치됐다. 친구는 먹지도 않을 음식을 1+1이나 2+1이라서 샀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달 내내 사다 보니 소비는 점점 늘었다. 결국 몇 달이 지나자 편의점에서만 매달 170만 원이나 되는 지출이 발생했다. 고민하던 친구는 지출의 원인이 외로움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야근 후의 늦은 귀가, 반복되는 일상, 변화 없는 삶. 그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이 외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친구는 편의점이 없는 다른 길을 이용했다. 그리고 러닝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200만 원 가까이 카드를 긁던 암울한 저녁루틴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 아니다.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은 일상 속에 숨어있다. 결제를 취소하고 밖으로 나갔다. 햇살을 받으면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빈손으로 나가서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