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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달래는 봄맞이 대청소

by 김태민
김태민, <벚꽃>, 달력커버에 크레파스, 18x20cm.

오늘은 대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대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깨끗하게 닦았다. 집안 곳곳에 쌓인 묵은 때를 벗겨냈다. 커다란 종이박스에 재활용품을 담아서 밖에 내놨다.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서 당근으로 무료나눔했다.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청소용 물티슈에 묻혀서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를 닦았다. 먼지 쌓인 책상과 화장대를 정리하고 보일러실에서 발견한 거미줄도 걷어냈다. 한동안 대청소를 멀리해서 그런지 여기저기 먼지가 많았다.


그나마 생활쓰레기는 제때 버려서 다행이었다. 생활하는 공간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는 오래된 루틴이 무너졌었다. 마음의 여유는 에너지다. 여유를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일뿐만 아니라 늘 했던 당연한 루틴조차 실천하기 힘들다. 밥을 차려먹고 집안을 청소하고 옷을 차려입는 것도 하기 싫어진다. 사람들 눈에는 게으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을 다치면 평범했던 일상이 두려워진다.


세상에는 직접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지난겨울 나는 삶을 이루는 기본욕구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내 안에서 타고 있는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장작이 전부 다 타고 하얀 재만 남은 것 같았다. 사는 게 아니라 삶을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가까스로 끝내고 남은 하루가 매번 막막했다. 멋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계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좋아했던 일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밥 대신 알약 몇 개를 먹고 배가 불렀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창작을 하는 일까지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공허감은 예의 없는 불청객 같았다. 맘대로 불쑥 찾아와서 새벽까지 머물다 갑자기 사라졌다. 자다 깨서 먹먹한 가슴을 달래려고 나는 뜬눈으로 남은 밤을 새웠다. 애정과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정말 괴로웠다.


버거운 하루하루가 전보다 너무나 무거워서 무서웠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무의미한 일상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 온 내 삶이 무가치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많은 것들이 귀찮아졌다. 씻는 것도 꾸미는 것도 귀찮았다. 아끼는 옷가지들을 중고장터에 팔아버렸다. 단골음식점을 찾아가지 않게 됐다. 운동이나 산책은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더 많아졌다. 집을 치우고 이브자리를 정리하는 당연한 일들이 점점 힘들어졌다. 여력도 여유도 없었다.


방전된 채로 매일매일을 흘려보냈다. 그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았던 것만은 천만다행이다. 자기 돌봄을 등한시하면서 자괴감과 죄책감은 늘었다. 자기애가 사라진 내면을 우울감이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만나서 다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이 힘들어서 싫었다. 회의감을 자주 느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을 무렵 극심한 무력감과 공허감이 찾아왔다.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붙잡느라 괴로웠다.


보이지 않는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 자신을 붙들고 겨우 빠져나왔다. 가까스로 일상으로 돌아와도 몸과 마음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나 기분은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닐 때. 그때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살아온 오래된 문제를 인정했다. 심약하고 나약해서 마음이 쉽게 무너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를 다그치고 비난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책하면서 자기 파괴를 일삼는다고 삶이 뜻대로 흘러갈까?


실패를 복기하고 반성하지 않고 습관처럼 나를 미워했다. 내 마음은 화살이 빽빽하게 꽂힌 핏빛 과녁이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모질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탓하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괴로움은 내 잘못이 아니다. 초라하고 비굴한 현재의 내 모습을 싫어했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초라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전보다 못하고 삶이 지지부진해도 살아있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을 나를 미워하느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날 나는 이불속에서 나와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다. 라면을 전부 다 치워버리고 밥을 지어먹게 됐다. 3달 넘게 방치했던 더벅머리를 잘라버렸다.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매일 세탁기를 돌렸다. 주 5일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전보다 삶이 확실히 밝아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청소를 끝내자 집안이 확실히 깨끗해졌다. 만족감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창 밖으로 보이는 명학공원에 바람이 불었다. 벚꽃 잎이 창가로 날아왔다.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먼지를 닦아낸 거실 바닥 위로 하얀 햇살이 손길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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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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