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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花粉)

by 김태민

늦은 밤 내리던 이슬비는 아침이 되면서 는개로 변했다. 거리를 걷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작은 빗방울이 옷에 가득 달라붙었다. 볼에 닿는 공기가 미지근했다. 비가 오면 입김이 나올 만큼 기온이 내려갔는데 계절이 바뀌면서 날씨도 변했다. 짙은 안개가 꼈다. 하얀 안갯속을 걷다 보면 어차피 옷이 젖는다. 거추장스러운 우산은 접어버렸다.


길 위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다. 전부 가장자리에 노란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물에 녹지 않는 송홧가루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꽃가루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꽃의 수술에서 떨어져 나온 꽃가루는 암술을 찾아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시야를 뿌옇게 흐릴 만큼 사방에 꽃가루가 흩날려도 수분에 성공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면 꽃가루는 바닥에 들러붙는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지저분한 흔적만 남긴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비 오는 날마다 노란 테두리를 단 물웅덩이를 볼 수 있다. 장대비를 맞아도 꽃가루는 녹거나 물에 풀어지지 않는다. 결실을 맺을 수 없는 미련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갈 곳을 잃은 감정은 시간에 의해 용해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침전된다.


세월이 지나면 색은 좀 바래겠지만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나 기억은 반감기가 없다. 물에 녹지 않는 송홧가루가 만드는 노란 테두리처럼 내면에 선명한 경계선을 형성한다. 한 번씩 상처 입은 마음속을 몰래 들여다보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 눈앞에 떠다니는 생생한 잔상은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다.


긴장감과 현장감이 교차하는 기억 속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오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물웅덩이 가장자리에 떠있는 노란 테두리를 보면서 오래된 감정이 만든 내면의 경계선을 떠올렸다. 구분선 너머 닿을 듯 말 듯 한 곳에 고개를 돌린 채 외면했던 과거가 보인다. 녹슨 철조망 같은 긴장감이 뒤얽혀있는 군사분계선이 남북을 갈라놓듯이 현재와 과거는 분리되어 있다.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인정이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른 척 잊고 살게 해 줄 뿐이다. 굳이 약에 비유한다면 진통제나 마취제에 가깝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기를 더는 바라지 않는다. 지금은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계속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것 같다. 참 오래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했다. 앞으로 갈길이 멀지만 막막함은 전보다 줄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노인이 되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감았던 눈을 두 번 다시 뜨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싶지 않았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통증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있다. 외롭고 괴로웠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안 좋은 기억들을 전부 다 흘려보낼 수 있는 계절은 오지 않는다. 마냥 살기 좋은 계절은 없다. 봄은 아름답지만 꽃샘추위와 지독한 일교차를 달고 산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물드는 가을은 태풍이 제철이다.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은 없다. 전부 다 섞여있다. 삶은 날씨처럼 좋았다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막연한 목적지를 설정해 두고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봐야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심을 버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일상 속에 깃든 하루치 기쁨을 찾아내려고 매일 노력한다. 생활에 깃든 작은 즐거움과 흔한 기쁨이 진짜 행복이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삶은 조금 가벼워진다. 단숨에 장르를 바꿀 수 없겠지만 장면은 전환할 수 있다.


한 번에 하나씩 바꾸다 보면 전보다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다. 물에 녹지 않는 노란 꽃가루처럼 사라지지 않는 과거를 품고 산다. 저마다 크기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미련과 후회를 안고 있지만 괜찮다. 계절이 바뀌면 풍경도 변한다.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늘 그랬듯이 살다 보면 또 살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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