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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만드는 남자

by 김태민 Mar 19. 2025
김태민, <꽃무리>, 달력커버에 크레파스, 19x24cm.

 심리상담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맞으면서 거리를 걸었다. 걷다 보니 맥도널드 근처까지 왔다. 평소보다 점심을 일찍 먹기로 했다. 앱으로 빅맥을 주문했다. 소스를 빼면 빅맥에서 이상하게 크레파스 냄새가 난다. 산미가 느껴지는 소스가 빵과 패티의 묘한 향을 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피클과 치즈 원인일까? 허기에서 비롯된 잡생각을 떨쳐내려고 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빅맥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이야기를 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 에너지를 제법 많이 쓰는 것 같다. 상담을 받으러 가면 평소에 닫아놓고 지냈던 문을 연다. 나도 까먹고 살았던 과거를 기억 속에서 하나둘씩 불러온다. 낡은 열쇠를 오래된 자물쇠에 밀어 넣고 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과거는 뿌연 연기처럼 불투명하지만 문을 열면 익숙한 모양으로 변한다.


 하늘거리며 날아다니지만 늘 입 밖으로 나가기 전에 갑자기 납덩이처럼 무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끄집어내느라 적지 않은 에너지를 쓴다. 그래도 말하고 나면 조금은 개운해진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안고 살았던 고통의 기록을 천천히 돌아봤다.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현실을 잊고 싶어서 독서에 몰입했다. 생활은 늘 괴롭지만 그림 속에 항상 화려한 꽃과 찬란한 별을 가득 그려 넣었다.


 창작은 내게 명성이나 부를 안겨다 주지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름 없는 방구석 예술가다. 그 사실을 실감하고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고 현실을 체감하면서 무력감에 빠진 적도 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창작이 내 삶에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삶에 하나뿐인 동아줄이자 나를 무너진 않게 바짝 쥔 단단한 고삐였다.


 외롭고 괴로울수록 이야기를 탐식했다. 성공담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었고 실패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소설과 시를 읽는 것이 더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보다 책이 편했다.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책 속으로 눈길을 던지는 편이 나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모든 관계가 다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나조차 버거웠다. 그래서 책을 탐닉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본 적 없는 세상을 손 끝으로 만지고 가본 적 없는 세계를 탐험했다. 읽고 느낀 점을 기록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그림으로 그렸다.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 모두 작품이 됐다. 공허와 불안을 글에 담았다. 삶이 어려울수록 찬란한 그림이 나왔다. 현실에 드리운 그늘이 비참할수록 양지를 지향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글로 표현했다.


 늘 초라하고 그늘진 얼굴로 지냈지만 행복과 소망을 담아서 그림을 완성했다. 조개는 껍질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을 자개로 덮어서 진주를 만든다. 나는 조개처럼 끊임없이 진주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큼 환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괜찮다. 내가 살아왔다는 증거이자 끝내 살아남았다는 증표다. 흔들리면서도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이정표였다.


 죽는 날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날동안 계속해서 진주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으니까 누구든지 하면 된다. 김점선도 하루키도 안도도 모두 같은 말을 남겼다. 누구나 가슴 안에 진주를 품고 산다.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표현하면 창작이 되고 예술이 된다. 감상은 보는 이의 몫이고 평가는 평론가들의 업이다. 작가는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한 때는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뛰어난 이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렇게 해서 얻은 호승심이나 경쟁심은 얼마가지 않아 사라졌다.  원동력을 상실한 채 한동안 방황했다. 손을 놓고 목적지를 잃은 채 계속 헤맸다.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무거운 죄책감은 사소한 계기로 봄눈처럼 녹아 없어졌다. 나랑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없다. 나랑 같은 글을 쓰는 작가도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동아줄이자 고삐였던 내면의 질긴 끈을 다시 세게 붙잡았다. 별일 아닌 일로 무너지면 사소한 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더는 재능이나 역량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깎여나간 자존감을 도로 찾아서 덕지덕지 붙였다. 길을 헤매느라 멀리 돌아왔지만 그 덕에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창작은 생존본능이었다. 멋대로 껍질을 깨고 들어온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작가가 됐다.


 낮과 밤처럼 삶과 고통은 이어져있다. 낮이 밤으로 변하는 동안 하늘은 자주 옷을 갈아입는다. 맑았다 흐려지고 비가 내리다 무지개가 뜬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삶은 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해 뜰 무렵이 제일 어둡고 산을 넘어가는 해넘이가 쏟아내는 햇살이 가장 붉다. 삶의 속성은 반전과 역전이다. 하지만 좋았던 순간이나 괴로웠던 시간은 모두 기록으로 남았다. 낮과 밤을 갈고닦아서 하얀 진주와 흑진주를 빚었다. 색깔만 다를 뿐 둘 다 똑같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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