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숨을 곳을 찾아서

by 김태민 Mar 14. 2025

 

김태민, <꽃무리>, 달력커버에 크레파스, 19x24cm.

 고양이는 아프면 숨을 곳을 찾는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똑같다. 본능은 유전자에 하드코딩된 거스를 수 없는 소스코드다. 포식자와 경쟁자를 피해 숨는 습성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친구네 고양이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다. 아픈 몸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집에 오자마자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친구는 한참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손길을 건네었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실은 기대고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혼자는 무섭다. 고통 앞에서 모든 생명은 나약해진다. 사람도 고양이와 닮았다.


 너무 괴롭고 힘들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든다. 누구든 마음을 크게 다치면 숨고 싶어 진다. 마음의 문은 보이지 않는다. 열릴 때나 닫힐 때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웃는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면서 몰래 문을 닫는다. 내면의 고통이 클수록 상처가 깊을수록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것 같다. 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밝은 모습으로 위장하고 일상이라는 은폐물 뒤로 몸을 숨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고 아픈 마음이 낫지는 않는다.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밖으로 손을 뻗을 만한 여력이 없다.


 괜찮은 척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마음은 위태로운 표면장력을 겨우 유지하는 중이다.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함께 있을 때는 괴롭다. 괜찮은 척하느라 항상 힘들었다. 기복이 심한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하면서 나를 감추고 흔적을 지웠다. 부자연스러운 무대 위의 엉성한 삼류배우처럼 살았다. 고양이가 털을 핥아서 체취를 지우듯이 나는 수시로 내 삶을 지웠다. 어두운 날들을 부정하고 밝은 곳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외면하면 결국 외면받는다.


 이른 새벽 쓰레기수거트럭이 오기 전에 몰래 나가서 괴로운 마음을 전부 버리고 싶었다. 내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는 폐기물 같은 응어리를 처리하고 싶었다. 쓰레기봉투가 굴러다니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싹 다 버리고 싶었다. 고통을 분리하고 싶었지만 과거의 아픔은 삶과 한 몸처럼 붙어있어서 분리수거할 수 없었다. 맘대로 떼어낼 수 없었다. 간절한 바람은 아침이 오면 바람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억지로 끌어안고 지냈다. 마음으로 지은 집 안에 오래된 쓰레기가 잔뜩 쌓였다. 문은 안으로도 밖으로도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됐다.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과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사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참 어렵다. 시시콜콜한 일상과 시답잖은 이야기는 밤새 나눌 수 있지만 정작 진심은 한 조각도 꺼내지 못했다. 부끄럽고 두려웠다. 덤불이나 수풀을 찾아 몸을 숨기는 초라한 들짐승처럼 아플 때마다 도망치면서 살았다. 아프고 괴로울 때마다 내 안의 깊은 동굴 속으로 도피했다. 피난처는 있었지만 안식처는 없었다.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내가 만든 내면의 작은 방은 익숙하고 때로는 편안했지만 계속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동물들은 아프면 숨을 곳을 찾지만 춥고 어두워지면 빛을 찾는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졌다. 잔뜩 쌓인 폐기물 너머 닫힌 문을 열고 내 발로 나왔다. 다친 고양이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가듯이 밖으로 나왔다. 용기나 결심 같은 거창한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듯이 마음도 달라진다. 오락가락하면서 소망과 절망을 반복해서 체감한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마음은 물과 같아서 계속 흐른다. 막혀서 고립되면 천천히 고이다 조금씩 증발한다. 진로와 퇴로가 막혀도 머리 위 하늘은 뚫려있다.


 가만히 앉아서 말라비틀어지다 탈수로 죽을 바엔 우물을 파다 탈진하는 쪽이 낫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느꼈을 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이 무너지면서 지하로 주저앉았다. 내려와서 주변을 둘러봤더니 올라가야 할 곳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흐릿한 신기루가 아니라 또렷한 현실이었다. 시선이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하게 됐다. 매번 도망쳤다가 늘 내 발로 다시 걸어 나왔다. 삶은 겁쟁이에게도 기회를 준다.


 포기하더라도 숨이 붙어있다면 이제까지 가지 않은 길 하나쯤은 시야에 들어온다. 여전히 아프고 괴롭다. 어차피 삶은 고통이다. 생명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이다. 서로 마주 볼 수 없는 것 같지만 수시로 뒤집어지면서 번갈아 찾아온다. 과거든 현재든 아픔은 잊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 살아있는 동안 자주 아프고 괴롭다. 바닥을 나뒹굴다 고꾸라질 때도 있고 병든 고양이처럼 숨을 때도 있다. 그러다 이렇게 다시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느낌표보다 물음표를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도 없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한 번에 하나씩 오답노트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살다 보면 나아지겠지 가다 보면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괴롭고 외로워도 살아남았으므로 앞으로도 늘 그랬듯이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이전 21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