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골목 끝 폭죽

[을지로 골목 끝 폭죽]

by 정이든

우연히 을지로 낯선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길을 조금 가로질러 보겠다고 인쇄소와 와인바와 이름 모를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을 굽이굽이 따라가게 된 것이다. 타인이 보기에 이는 매우 평범한 일이겠으나 내게는 설레고 이색적인 경험이다. 큰길에서 한 블록만 옆으로 꺾었을 뿐인데, 보이는 풍경이 마치 준비되지 않은 무대처럼 낯설고 어수선하다. 시야가 머릿속에 한 번에 확 들어오지 않고 잠시 버퍼링이 생긴다. 하지만 새롭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즐겁다.


거리가 조용한 탓일까. 낯선 길에서는 저벅거리는 발소리도 낯설다. 나는 내 걸음이 아닌냥 살금살금 걷다가, 어느새 자신감이 붙어 성큼성큼 걸어 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주변을 살피는 길고양이처럼 잔털을 살짝 치켜세운 채 걷는다. 긴장하거나 두려운 것은 전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숨죽여 있던 호기심이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가며 작은 파고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이 길에 세탁소가 있었던가? 신기하다. 멀리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무(無) 취의 거리 냄새가 풍겨온다. 그 사이로 커피냄새인가 아니면 고소한 빵집 모카번 냄새인가 하는 것이 뒤따라 오다가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사라졌다. 거리는 다시 무색무취의 가라앉은 낙엽처럼 내리깔린다.


새로운 길로 와보길 잘했다. 이 길로 들어서기 전의 나는, 마치 아삭거리는 사과를 베어 물려다 이가 시릴까 머뭇거리는 찰나의 나처럼 흐릿한 불안감을 마음속 다락방 한편에 남겨두고 있었다. 골목에 발을 한 걸음 내디뎠을 때는 차를 몰고 처음 고속도로로 나서던 날, 돌아오지 못하고 부산으로 가버릴 것만 같던 아득함이 떠올랐던 것도 이제는 고백한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을 담으려 애썼다. 그러나 각각의 사물에 -이를테면 전봇대, 간판, 넘어진 자전거 같은 것들- 초점이 자꾸 분산되는 탓에 욕심을 이내 비웠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이 길을 평생 지나가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기를 낸 덕분에 나는 이방인으로나마 이곳에 존재할 수 있었으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익숙하다는 핑계로, 뛰쳐나올 수 없는 긴 무빙워크를 걸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내 걸음에 붙을 수 있는 가속도는 유한함에도 마치 더,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처럼 무빙워크 위를 빠르게 뛰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일직선이 아니고 곡선, 아니 굽이굽이 낙서에 가깝다.


그러니, 가끔은 뛰쳐나와도 괜찮다고 믿어 본다. 무빙워크 끝에 도달해 터질 폭죽이 축하를 위한 팡파르일지, 새로운 출발을 종용하는 출발신호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


굽이굽이 을지로 골목길이 끝나고, 익숙한 큰길이 나타났다. 그렇게 낯설고 짧은 여행은 끝났다.

큰 길이든 골목 길이든 끝은 있다. 그러니, 꼭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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