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란

특별한 작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by 정이든

사유는 중독적이다. 생각이라는 녀석은 현실과의 거리를 아득하게 하여 상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예 생각을 놓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나같이 평범한 이는 습관에 매몰되어 하루를 흘려보내고 후회하는 레퍼토리를 쉽게 반복하기 때문이다.


*


주말 아침, 동네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대단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글감을 구상하고 밀린 책을 읽기 위함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아니면 잠이 덜 깬 탓인지는 모르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한번 발을 들인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잡생각 여행은 1시간을 꼬박 넘겼다.


1시간 내내 글은커녕 아무 일도 못한 채, 노트북을 펼치고는 턱을 괴고 창 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오늘따라 글쓰기가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작가라는 허울도 '좋은 대학을 가면 무언가는 되겠지' 했던 고등학교 시절 내 어리고 나이브한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습작인가 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경험하고, 듣고, 호기심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계속 문장들을 내뱉다 보면, 어느 지점에야 비로소 누군가가 좋은 작가라고 인정해 주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곳까지 가지 못했다. 완숙하기 전에 내 생각만 반추하고 쉽게 내뱉은 탓이다. 타인이 기꺼이 읽어줄 글을 쓰는 것은 능력이다. 나는 그런 것에 서툴다.


유행을 맞추고 시류에 편승하고자 노력하던 때가 있다.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섹션의 자기계발서와 시중의 에세이들을 읽어보고, 꾹꾹 한편에 몰아넣은 다음 반죽을 비비듯 글을 짜 냈었다.


그 경험은 부끄럽지도, 자랑스러울 일도 아니다. 다만 그때 쓴 글은 내가 아닌 타인의 글 같아 서운했다.


나는 알베르 카뮈의 글을 참 좋아한다. 주제는 차치하고, 그의 문장은 번역된 것임에도 유려하여 마치 잘 짜인 오페라 연주를 글로 듣는 것만 같다. 나다운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이고 싶다.


잘 짜인 글로 완숙함을 포장하여 읽는 사람에게 글을 대접하고 싶다. 대접이라 하여 내가 을이고 당신이 갑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글로써 동등하게 생각을 교류하고 각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츄르릅"


어라? 커피가 동나고 빨대에 물만 올라온 덕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마터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생각의 나래를 펼칠 뻔했다. 다행이다.


1시간 러닝타임의 서사는 제법 길다. 하지만 상당수가 쓰잘대기 없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린 순간 휘발되고 말았다. 그나마 억지로 시놉시스를 한마디로 축약해 본다면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로 설명할 수 있겠다.


나는 더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동네 헬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운동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옳다. 나는 하루에 최소 몇 시간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그 생산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매번 정의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운동을 하며 시간을 쓰는 것은 이미 그 생산성이 담보되어 있어 죄책감을 덜게 해 준다.


*


그렇게 평범한 주말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유들은 이렇게 결론이 흐릿한 채로 끝나거나 오히려 새로운 의문점을 남긴 채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떡밥을 회수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몇몇 만화책 같다.


내게는 대단한 경험이나 성취는 없다. 나는 그저 보통의 직장인이다. 삶의 뾰족하고 자랑할만한 부분이 없냐면 또 그렇지도 않겠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올이 나간 헌 옷 같은 개인사를 마치 대단한 것인 양 풀어쓰는 것은 낯부끄럽다. 사람들이 한번 더 볼만한, 그럴듯한 제목 다는 것부터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완숙은커녕 반숙란조차 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평범한 30구짜리 회색 종이판 위의 날계란 같이, 그저 언젠가 요리를 위해 선택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함으로 하루를 지탱하는 모든 이에게 우리는 평범하여 특별한 존재고, 그러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려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날 세우고 불편해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평범함에도 안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우리 모두의 메시지다.


*


어떠한 작가가 될지는 모르겠다. 앞으로도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유로 조금 더 명확해진 것은,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전업으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냐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좀이 쑤시고 나와는 안 맞을 것 같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작가요'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다.


너무 오래 끓어 완숙되기 전에, 반숙란으로 건져지면 좋겠다. 회색 종이판 위의 날계란 시절을 기억하며, 텃밭을 가꾸듯 글 쓰는 것으로 이미 즐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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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UnsplashAlex 張飛

일러스트: ChatGPT+직접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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