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 그리고 셔터

40.1도의 마침표

by 정이든

목욕탕에서 온탕에 몸을 담그면, 온몸으로 퍼져오는 따뜻함이 좋다. 꾸준히 몸을 데우려고 찾는 온탕은 일상에 하나 더 기대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어 준다. 감사한 일이다.


운 좋게도 집 근처 헬스장 옆에 사우나가 있어서, 운동을 마치고 종종 사우나를 들르곤 한다.


옷을 벗고 땀을 씻어내고 탕에 들어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데도, 운동으로 달궈진 몸은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냉수.... 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차가운 물로도 거뜬히 1차 샤워를 마친다. 예전에는 온수가 아니면 샤워도 못했는데,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 온도에 덜 민감해진 탓일까.


샤워를 마치고 온탕에 들어가면, 목을 턱에 걸친 채 몸을 쭉 늘여 눕다시피 한다. 부력에 몸이 뜰랑말랑하니, 정말 둥둥 떠오를까 싶어 살짝 몸을 들어본다. 그러다 보면 몸이 나른해져 스르르 눈을 감게 된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탕마다 온도계가 달려 있다. 내가 가는 온탕의 온도계는 보통 40.1도를 가리킨다. 사람의 체온이 36.5도니, 내가 고열이 있지 않은 한 내 몸보다 뜨거운 온도다. 그렇다면 탕 속의 나도 덩달아 뜨거워져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탕 속에 피부의 모든 면을 내맡겨둔 덕분이다. 또한 걱정과 생각을 멈춘 덕분일 것이다.


몸이 더운 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든다. 손에 묻는 끈적함 없이 달짝지근함만 남았다. 일상의 고단함과 근육의 긴장감이 휘발된다. 아직 집에 가서 잠에 들려면 두어 시간 남았건만, 온탕의 온기는 강제로 내 하루의 셔터를 내리고 마침표를 대신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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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작은 지방 도시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시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가게 셔터를 열고 퇴근길에 셔터를 닫으셨다. 나름대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여미는 의식이 있었던 셈이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테다. 아버지는 셔터를 닫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루를 무사히 마침에 안도하셨을까 아니면 못내 아쉬웠을까.


아버지와 나는 일요일이면 목욕탕에 가서 함께 목욕을 했다. 어린 나에게 그때의 온탕은 따뜻하지 않고 너무 뜨겁기만 했다. 그래서 사람이 없으면 주로 냉탕에 들어가 풍덩거리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가끔 아버지를 졸라서 사 먹던 바나나우유는 어찌나 맛있던지.


그 시절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던 때가, 아버지가 내 등을 밀어주시던 때가 엊그제 같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때수건은 쓰지도 않고 좋은 바디샤워로 혼자 몸을 헹구는데 익숙한 나이지만, 여전히 사우나는 잠시 몸과 생각의 셔터를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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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에 들어온 지 10분쯤 흘렀을까? 작은 온탕 물웅덩이에 몸을 의탁했다가, 잠시 앉아서 하품을 크게 했다가, 다리를 펴며 스트레칭하다 보니 이제 슬슬 몸이 더워졌다. 더 버티고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몸을 일으켜 탕을 나섰다. 마침표를 찍으려 들어왔다가 점이 두세 개 더 찍혀 말줄임표가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날이 덥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온탕에 들어가 몸을 데우는 것을 보니 아직 나는 덜 따뜻한 사람인가 싶다. 또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 아직 마음이 뜨거울 수 있는 열정의 그릇이 적은 탓인가 싶기도 하다. 셔터를 잘 올리고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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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UnsplashDavid Pisnoy

일러스트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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