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사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표현

by 정이든

"서프라이즈!"


작년 팀원의 생일날이었다. 회의를 핑계로 회의실로 불러내어 몰래 준비한 케이크로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었다. 케이크를 발견한 팀원이 놀라는 순간을 내가 사진으로 찍었는데, 정말 걸작이었다. 눈이 동그래져서 화들짝 몸을 뒤로 열어젖히는 모습이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아 퓰리처상 감이다. 초상권만 아니면 곳곳에 자랑하며 보여주고 싶을 만큼 완벽한 한 컷이었다.


신기하게도, 내 휴대폰도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자동 사진 추천 기능에서 유독 이 사진을 자주 띄워준다. 내 사진도 많은데 주인도 못 알아보고 정작 다른 사람의 사진을 더 많이 추천하는 휴대폰이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이 팀원의 놀라는 사진만큼은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요즘 기술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휴대폰으로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인공지능이 알아서 사진 추천과 보정까지 해준다. 날짜별로 정리되고 드래그 몇 번이면 몇 년 전 사진 찾는 것이 너무 쉬워진 세상이다. 게다가 사람 얼굴도 인식해서 분류해 주다니, 진정 신세계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 바로 사진이 품고 있는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들이다.


나는 가끔 과거 사진을 보며 시간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우연히 포착한 일상의 한 장면, 맛집의 정갈한 음식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그 순간의 대화와 분위기, 기분 같은 것들이 상기된다. 각각의 사진은 단순한 픽셀의 조합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더니 정말이다.


내가 아끼는 사진이 있다. 어린 시절, 집 근처 평범한 공터에서 놀던 누나와 찍힌 사진이다. 특별할 것 없는 배경, 조명도 완벽하지 않은 그 사진이지만,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의 나와 우리 가족의 따뜻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순간은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순간이었겠으나, 사진으로 남겨진 덕분에 이제 내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삶을 살아가고 순간들을 기억해 내는 것, 그리고 하나씩 꿰어내어 긴 구슬 목걸이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덕목이 아닐까. 목걸이 하나하나가 우리가 살아온 증거이자 예술 작품인 셈이다.


*


다른 한편에서 깊이 생각해 보야할 점이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나 친절,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사진에 찍힌 것은 활짝 웃고 있는 누나와 철부지인 내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 사진이 숨겨두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셔터를 눌러준 부모님의 깊은 애정이다.


타인을 찍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인 행위다.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그 순간을 기록해 주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시간을 잠시 멈추고 다른 사람의 소중한 순간에 집중해 주는 것, 그것은 이타성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사람들과 정기 러닝 모임을 했다. 이 날 인생 두 번째로 5km를 완주했는데, 10km, 하프 이상 뛰는 러너분들께는 무척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장거리 달리기를 거의 안 해본 나에게는 대단한 업적(?)이었다.


모두 땀에 흠뻑 젖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 뜻깊은 순간을 꼭 기록해야 한다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침 지나가던 학생으로 보이는 분께 죄송함을 전하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분의 반응이 놀라웠다. 흔쾌히 수락해 주신 것도 고마웠는데, 사진 각도를 여러 방향으로 바꿔가며 가로와 세로를 번갈아 찍고, 줌인과 줌아웃을 조절하며 무려 20여 장을 찍어주신 것이다. 그것도 미소를 지으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순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수 있다니... 뭐라도 있었다면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 학생 분은 아마도 (러닝 모임으로 추측되는) 이 사람들이 순간의 소중함을 최대한 기록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거절하거나, 한두 장 대충 찍어주고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는데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쏟아준 것에 다시한번 감사하다.


사진을 찍는 방식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대변한다. 그 학생분처럼 모르는 타인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준다는 것은 단순한 이타성을 넘어서 인류애와 동질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봄 산행에 가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 사진을 찍는 어르신들은 (물론 나도 이제 슬슬 그럴 나이인 것 같으나) 자연이 선사하는 본질적 아름다움과 경외감에 귀 기울일 줄 아시는 분들이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것이다.


문득 학창시절 한 친구가 떠오른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내가 찍사를 자처하며 단체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 굳이 타이머를 맞춰두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던 친구. 그 친구는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그 순간의 소중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사진은 단순히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고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더 따뜻하고,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더 많이, 더 기꺼이 찍어야겠다. 화창한 날에 좋은 풍경에 둘러싸인 사진이면 더욱 좋겠다. 마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사진이라면, 조금 초점이 맞지 않아도, 표정이 조금 우스꽝스러워도 괜찮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타적 사진사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구슬을 꿰어낸 이 순간을 언젠가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봄, 사진으로 남긴 소중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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