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화

더 또렷하게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by 정이든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그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무엇이든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중에 '팩트풀니스'라는 책이 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정량화된 통계 데이터로 알려준다. 이를테면 나쁜 뉴스들은 훨씬 더 전파력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오해하는 경향성을 강화한다. 어느 나라에서 비행기가 떨어졌다든지, 자연재해가 생겼다든지 하는 일들은 뉴스에 빈번하게 나오지만 평화로운 어느 한적한 곳의 안전함은 보도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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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하게, 세상을 100%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각자의 추론방식과 사고패턴들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 개인적인 성향 같은 것들이 누적된 결과로써,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을 각자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한다.


나이가 들 수록, 비슷한 생각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생각의 편향성은 더 강화된다. 믿고 싶은 대로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와 생각이나 성향이 다른 유튜브 채널을 굳이 즐겨 보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거나, 최소한 개그코드가 비슷한 사람들의 영상을 즐겨 보고 생각의 주파수를 맞춘다.


그런 내 편향성을 무시하고 나와 척점에 있는 사람의 의견이라든지, 관심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본능에 역행하는 일이다. 일단 에너지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자주는 어렵고 가끔이나마 '어 이게 맞나?', '나 너무 이쪽 의견만 듣나?' 하는 모먼트를 주기적으로, 잊지 않고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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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HR Analytics라고 하여, 데이터 기반의 HR이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이직률, 설문결과, 교육 참여도와 같은 보이는 HR 통계 데이터를 모아서 뜯어보면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얘기하는 데이터는 직접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HR 데이터까지 강박적으로 포괄한다. 이를테면 한 직원이 가장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대, 성과가 나는 팀의 팀원의 정보와 같이 데이터들의 관계성까지도 분석 대상으로 고려하였다. 포인트는 인사담당자들이 괜히 어리 짐작해서 엉뚱한 판단을 하지 말고, 팩트로 얘기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큰 각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데이터를 넘어서는 현재의 AI 트렌드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고, 사람과 관련된 데이터들이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수집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사람이 판단하나 결론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도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도 데이터! 데이터!!라고 외쳐대니 열심히 데이터는 모아 뒀는데, 그래서 뭘 하지요? 하며 갈 곳을 잃어버린 부분도 있다. 나는 이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팩트도 중요하고 Data도 중요하고 객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가는 존재로서 인간은 의미성을 갖는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 의미를 찾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자 엄한 곳으로 출발하지 않기 위한 나침반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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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 그러니까 '자기 객관화'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나를 둘러싼 세계는 그래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힌트를 준다.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최대한의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려는 노력을 가지면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는 마치 나 스스로가 내 모습을 매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렵다. 영상에 찍힌 나, 녹음된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마치 내가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 실존하는 나의 가장 객관적인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 '객관화된 나'라는 것이 실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가변적이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맥락과 경험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답 없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뛰어들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나 스스로를 100%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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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강당에 모인 회사 사람들 앞에서 1년간의 교육계획을 발표할 일이 있었다. 전체 행사가 녹화되다 보니 덩달아 내 세션도 함께 녹화가 되어, 나중에 원본 영상을 받아 보았다. 그런데 도저히, 정말 도.저.히. 내 영상을 못 보겠더라. 일단 목소리부터 너무 달라,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태도, 표정, 자세 같은 것들이 너무 생소하여, 채 1분을 다 보지 못하고 영상을 꺼버렸다.


나름 정장을 입고 멀끔한 모습으로 실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무난하게 해치웠기 때문에 그렇게 나쁠 것이 없는 영상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민낯을 볼 자신이 없었나 보다. 연예인들은 자기 영상을 매번 모니터링한다던데 정말 리스펙트 한다. 웬만한 용기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피겨선수 김연아는 경기 후 자신의 연기를 수십 번 돌려본다고 한다. 좋은 장면보다 실수 장면을 더 오래 본다고 하던데 정말 대단하다. 그것은 자책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관찰이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하기에 나 같은 범인들은 제법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도 가끔 객관화가 잘 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니 먼발치에서 내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과 시도들이 유효했었다. 특히 일을 할 때,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나의 산출물들을 바라보면 잘한 점과 못한 점이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보였던 경험이 있다.


객관화란 결국,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키워가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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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계속해서 바뀐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고등학교 때 평생 피를 보는 것은 불행할 것 같아 의사는 되지 않겠다며 문과를 선택했다.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되지 못한 지금의 내 생활을 후회하냐면 그것은 또 아니지만, 지레 포기한 다른 길들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의사가 되어 직업으로 피를 봐야만 한다면? 뭐 못할 것도 없지 싶다. 생각은 바뀌는 법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내가 생각했던 사실과 실제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것을 인정하는 데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내가 바득바득 우겼던 그 생각들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겠는데? 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기는 경향을 더 강화해서 날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겸허하게 돌이켜보는 사람이 있다.


많은 경우에 나는 전자의, 소위 고집불통 유형이었다. 지금도 많은 순간에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 대한 이해는 많은 것들이 가설에 근거하거나 나라는 평범한 사람의 작은 식견에서 비롯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AI가 세상을 이해하는 만큼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여 머릿속에 탑재한다 한들 그것 또한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사상, 의견, 상상과 같은 것들로 버무려진 다수설 같은 것이지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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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객관화는 많은 부분이 나의 부족한 부분과 연결되어 결국 겸손해지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또 나의 부족한 면만을 끄집어내는 형태로 객관화하여서는 또 안 되겠다. 나도 분명 강점이 있는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인식해야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다.


주변에 객관적으로 잘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이 좋다. 무조건적인 응원이나 비판보다는 적당한 수준으로 팩폭 하면서도 가끔 어화둥둥 용기를 줄 수 있으면 가장 좋겠다. 동시에, 나 또한 타인에게 그 정도의 가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계속 고민해 볼 부분이다. 몇몇 지금 떠오르는,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좋은 영향력들을 주고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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