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한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음을
항상 변하고 있다. 매일 매시간의 날씨가 다르듯 나를 둘러싼 환경도, 사람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외부의 변화는 내면의 변화와 상호작용한다. 내가 바뀌어 세상이 바뀌는 것인지, 세상이 바뀌어 내가 바뀌는 것인지 인과관계는 모르겠다. 나의 내면은 변화에 적응하거나 저항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반드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멈추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일단 걸음을 옮겨 본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이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바뀌고 있다.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다. 나는 내 존재를 연속성 있게 인지하고 있으나, 같은 드라마도 매 에피소드가 다르듯 실상 나는 매번 다른 순간의 에피소드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현재 이 순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앞으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다. 이 순간의 나는 변화하여 다른 나로,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나로 바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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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직을 한번 한 적이 있다. 앞선 회사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여러모로 많이 다른 회사다. 인사 업무라는 큰 틀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변화가 없으나, 업종이 다르고 조직문화가 다르고 상세 직무도 바뀌었다.
아마 10년 전 예전 회사에서의 내가 지금의 나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좋게 바뀐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테다. 그때의 나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테니. 10년간 겪었던 크고 작은 수고스러움을 듣고 나서, 그는 아마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 줄 것이다. 그 상상만으로 마음 한편에 은은한 울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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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후 변화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나를 둘러싼 사람의 변화였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나와 가장 많이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크든 작든 나에게 스며든다. 그러니, 주변의 사람구성이 바뀐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세상과 나의 상호작용 패턴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와 친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생각, 행동 패턴이나 살아온 맥락 등을 일정 수준 이상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의 선호도나 취향 같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대화의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수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술의 도움을 받아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수단을 보조한다 한들, 장벽이 유의미하게 허물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직 후에 다수의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재미있고 감사한 과정이었다. 다만 동시에, 상대의 장벽과 나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도 필요했으므로 에너지소모가 무척 큰 일이라고 느꼈다. 이 과정을 단축하기 위해 내 장벽을 최대한 스스로 허물어 보았다. 그것이 누구든, 상대가 언제든 잘 넘어올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효과는 있었으나 자신의 장벽도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는 내가 결이 맞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장벽을 넘기도 했으므로 모든 사람, 모든 관계에서 무조건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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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능력이다. 그것도 요즘처럼 세상이 휙휙 바뀌는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실패했을 때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능력인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변화탄력성, 생각탄력성, 행동탄력성 같은 탄력성 시리즈를 길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또는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뻣뻣하고 유연하지 못하면 쉽게 다친다. 부러지지 않도록 여유로운 마음을 항상 확보하고, 과거의 나와 과하게 연대하지 않으며 탄력적이어야 하겠다.
필요에 따라서는 내가 스스로, 먼저 변화해야 한다. 주변의 변화에 쫓겨 다니기만 하면 삶의 주도권을 갖기가 어렵다. 삶의 어느 영역에서든 나 스스로 바뀌는 시도를 꾸준히 해야만 한다. 그것은 삶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변화에 적응하되, 직접 변화를 기획할 줄 아는 인생의 기획자로서 또 실행자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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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습관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10에 1,2번 성공했을 따름이다.
올해 여름, '이제부터 새벽 6시에 일어나 러닝을 하겠어!' 하고 결심했던 날이 있었다. 다음날, 기어코 일어나 5km 러닝을 했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하지만 그날이 끝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침 러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미라클모닝은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나는 나 자신이 쉽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생각이고 내 행동이니 나의 습관은 바뀌고자 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자만심이다. 그러나 습관의 관성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하여 요술방망이로 뚝딱 하고 바꾸듯 바꿀 수 없었다. 살아온 삶의 패턴, 생각의 방식이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으며,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우리는 큰 저항에 부딪힌다. '아침부터 무슨 러닝이냐, 잠이나 더 자.' 하는 말에 매번 '그럴까?'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10에 1,2번 성공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인 듯하다.
습관만큼 바꾸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감정이다. 연인 사이에 갑자기 이별이 찾아오면 누구나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매일 내 삶에 녹아들어 익숙했던 상대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허전함에 치를 떨게 된다. 쿨하게 괜찮을 거야, 했던 마음도 불쑥불쑥 요동친다. 그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여 '시간이 약이야'라고 주변에서 얘기하지만 도통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주 한잔만 딱 마시고 이제 잊는 거야!' 하고 술을 진탕 마시고는 취해서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울며 헤어진 전 연인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하고 폰을 부둥켜 쥐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날 때도 그렇다.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지 못해 폭발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한심하고 안타깝다.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나의 부분은 극히 일부분인가 보다. 그래도 계속 부딪힐 수밖에. 대신 변화를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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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브레이크에만 발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는 가끔은 엑셀도 밟아주고, 차선변경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변화하는 연습은 필요하다.
내가, 또는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내 뜻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들, 그것이 내 탓만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마음을 현혹하는 것들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바뀌지 않고 이리저리 끌려가듯 살아가는 것은 현대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를.
중요한 것은,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음을 매 순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다정한 시선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