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이머의 소회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오브데스!
송년회 겸 오랜만에 대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종종 보던 친구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본 반가운 얼굴도 있어 옛 추억을 회상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버티고 있어 멋졌다. 아, 버티고 있다는 표현은 친구들에게 '아마도 힘듦이 있을 것이다'라는 오지랖이 투영된 발언인 것 같아 정정한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적당히 노력하며 적당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친구들과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니 마치 대학생이 된 느낌이 들었다. 대학가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를 시켜 놓고 술게임을 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중에서도 '더 게임오브 데스'라는 술게임이 생각났다. 이 게임은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오브데스!'라는 구호를 외친 후,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빵 하고 쏘면서 순서대로 술 마실 사람을 선정하는 게임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게임은 황야의 무법자 같은 카우보이 영화나 러시안룰렛 같은 것에서 모티브를 딴 것 같다. 빵! 하고 손으로 총을 쏘는 모션이 있으니. 이걸 20년 지난 지금에야 깨달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어른이 된 척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내 깨달음의 스펙트럼은 협소하고 자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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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를 추구해 왔는데, 재미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한 방식은 뭐니 뭐니 해도 ‘게임’이다. PC, 핸드폰으로 하는 게임은 당연하고 보드게임이나 마피아 같은 게임도 좋아한다. 아무래도 게임하는 순간만큼은 주변을 잊고 재미추구에 몰두할 수 있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승부욕도 게임에서 재미를 얻는 하나의 이유다. 스포츠도 게임의 일부라고 본다면, 축구같이 대결하는 스포츠만큼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게임이 없다. 회사에서 풋볼 동호회를 총무까지 맡아가며 참여한 적이 있는데, 골을 넣고 경기를 이겼을 때 그 희열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게임 얘기를 조금만 더 하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 시절 아버지가 사다 주신 겜보이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슈퍼마리오와 이름 모를 비행기, 총싸움 게임을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후 컴퓨터가 보급되어 PC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당시 고가의 PC를 구매해 주신 부모님께 무척 감사하다. 부모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고전 RPG 영걸전, 삼국지 시리즈, 용의 기사, 영웅전설, 파이널판타지 7/8 같은 (써놓고 보니 이름이 엄청 유치하다) 고전 RPG 게임들을 하며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 게임들은 나이를 먹은 지금도 종종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게임이란 시간낭비이며 과하지 않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한 번 빠지면 몇 시간이고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3년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게임을 적게 한 기간이다. (반대급부로 대학교 때 주구장창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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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라는 행위는 대체 왜 그리도 재미있고 중독적일까?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유희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 비추어 생각하건대 유희 = 놀이 = 게임은 인류와 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아니다. 솔직히 인류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루덴스함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유희를 부정적이고 소거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의 일부로써 활용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하고 적당한 수준의 재미란 어느 정도의 재미인가. 나는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수혈하고 있으며 재미없는 순간의 침묵들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나는 인간으로서,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고민들을 하며 재미를 추구하고 때로는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재미'를 절대 모두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며 혹시라도 잠시 침울하고 진지한 삶의 지점에 도달한다면 소소한 농담을 던지며 인생의 게이머로서의 여유를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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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여행도 직접 가지 않고 여행 유튜버들을 통해 한다고 한다. 소파에 누워서는 먹방 유튜버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맛집 탐방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삶의 모험을 유튜버들과 OTT 프로그램에 위임한다. 움직이며 직접 재미를 수집하기에는 에너지 여력이 많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재미는 수분 같은 것이다. 하루이틀 없다고 하여 죽지는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수분을 보충하듯 게임으로 재미를 보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일상이 한창 재미있을 때는 게임을 찾는 강도와 빈도가 현격하게 줄였던 기억이 난다.
삶의 재미라는 카테고리에는 다양한 방식과 테마가 존재한다. 고차원적인 의미에서의 재미란, 삶의 전체 여정 가운데서 매 순간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간다면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함과 반복되는 고통과 무(無)의 성찰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즐거움을 느끼는 수준의 반열도 있겠으나, 그렇게 까지 고차원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확실한 것은 무작정 한 갈래의 재미만을 좇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평생 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으며, 설령 그런다 한들 보편적으로 추구되는, 다양한 영역의 재미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자연수를 가져오더라도 1과의 최대공약수는 1일뿐이다. 그러니,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재미를 추구해야겠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도적으로 주변 환경을 조작한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정도다.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장치와,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꾸준히 만들고 나로 하여금, 또는 그들로 하여금 재미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작지만 즐거운 것들에서 재미를 찾아내야지. 나아가 재미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재미를 뽑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스쳐 지나가는 보통의 순간도 시트콤 속 여러 에피소드들 중 하나처럼 여겨보려 한다. 그러면 너무 다큐스럽지 않고 예능스럽지도 않게 적당한 수준의 재미를 채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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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최근 자랑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집 근처 인형 뽑기 가게에서 작은 짱구 키링을 뽑은 것이다. 인형을 집는 순간 자꾸만 놓는 기계에 잠시 분노하였으나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다. 인형을 뽑는 짧은 순간을 오롯이 즐기려고 노력한 내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작은 키링인형 하나에 1만 2천 원을 썼음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