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97, 실력이 3
고등학교 시절, 한 학년에 300명이 넘었으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전교생은 1,000명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월례 조회를 하는 날이었다. 한참 얘기를 하던 교장 선생님께서 갑자기 3학년 1반 00을 불렀다.
옆자리 친구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잠깐 정적이 있었고,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실실 웃고 있던 나는 친구들의 시선을 보며 깨달았다. 아뿔싸, 3학년 1반 00은 나였다.
선생님의 질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랜덤으로 학생을 1명 찍어 의견을 물어보려 하셨던 것 같다. 나는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졌고, 어버버 답변을 했었다.
그 순간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확률 때문일 것이다. 1,000명 중에 1명이라니, 0.1%의 확률이다. 1,000장의 명함에서 딱 한 장을 뽑았는데 내 명함이 걸릴 확률이다. 이렇게 낮은 가능성을 뚫었다는 생각에 그 강렬함이 잊히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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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매주 주택복권을 사 모으셨다. 주말만 되면 나는 누나와 함께 할아버지의 주택복권이 당첨되길 바라며 번호를 맞춰 드렸다. 한 번쯤 걸릴 뻔도 하건만, 애석하게도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주택복권 1등의 꿈을 이루시지 못하셨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한때 매주 로또를 열심히 샀다. 결과는 항상 꽝이거나 가끔 5,000원 당첨이 전부였다. 814만 분의 1 확률은 역시 뚫기 어렵나 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내게 엄청난 우연이나 행운을 겪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서울시청 앞 광장의 건강식품 팝업 행사에서 룰렛을 돌려 1등으로 5만 상당의 영양제 세트를 받았던 기억 정도다. 에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 영양제는 아닐 거다. 할아버지 또는 행운의 여신께서 아직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자.
큰 우연이 없었던 것이 어쩌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삶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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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점은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냥' 일어난다는 점이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인간은 누구나 그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세상에 100% 이해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물체가 중력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끝까지 파고들면 그 본질적인 이유를 100% 이해할 수는 없다. 중력이라는 것은 왜 서로를 끌어당기게 만들어져 있는가? 언제부터? 왜?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삶에서 겪는 많은 일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많은 우연들의 중복일 뿐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체가 태어났다는 말도 안되는 우연부터, 내가 눈을 뜨고 매일 마주하는 일상도 그저 우연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셀 수 없는 우연이 겹친 경이로운 산물이다. 많은 일들은 그저 그냥 일어난다.
그러니, 우연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연이어서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태어나 한국 땅 위에서 회사를 다니며 HR 일을 하고 지금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그저 큰 우연에 불과하다. 다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애써 그 우연성을 무시해 왔을 뿐이다.
좋은 우연 = 행운이라고 한다면, 행운도 마찬가지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이 낮은 확률의 이벤트만 '행운'이 아니다. 신호등이 마침 바뀌어 기다림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운이나, 구내식당에서 좋아하는 소시지가 나오는 행운도 큰 틀에서는 행운이다.
보통의 행운들에 더 감사하며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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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인생의 성공은 대부분 이 행운이라는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다. 일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댓글을 보았다.
"운칠기삼이라고 인생의 운이 7, 실력이 3이라던데 아니더라고요, 운이 97, 실력이 3인 것 같아요"
정말 공감되는 댓글이다.
HR업무를 하며, 매년 승진하거나 승진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리 잘나고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사업이 어렵거나 조직 상황상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면 올라가기 힘들었다. 또는 별로 능력 없어 보이는 사람도 때를 잘 만나거나, 윗 사람이 물러나는 것과 같은 운이 풀려 승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각자의 위치에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꼭 운이었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매 순간의 선택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현재를 구성하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까지 내가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나의 선택에서 오롯이 파생되기 보다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우연으로 인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거나, 내가 원하면 원하는 만큼 이뤄진다는 자기 계발의 말들은 100% 정답이라 할 수 없겠다.
다만 행운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도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유효하다. 로또는 지나가다가 번개에 맞는 확률이라는데, 그럼 번개에 맞는 것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하면 번개를 맞을 수 있을까?
일단 밖에 나가야 한다. 집에만 틀어박혀서는 번개를 맞을 수 없다. 일단 나가서, 넓은 들판에 가든지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한다. 그러고 나서? 피뢰침이라도 들고 있으면 번개를 맞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피뢰침 하나 보다는 여러개가 더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날씨도 나빠야겠지. 막상 산에 올라갔는데 맑은 날씨라면 아무 의미 없을 테니.
이런 맥락에서 사람의 의지나 노력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들이 내 인생에 유의미한 수준의 긍정적인 결과를 항상 담보할 수는 없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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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되는 인생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그저 큰 바다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와 마주한 돛단배일 뿐이다. 조금 덜 출렁이기 위해 배를 키우고, 또 노련한 배 운전솜씨를 길러보지만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올 때면 그저 하늘에 기도하는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근래에야 사회가 발전하여 안전하고, 내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제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도 급격한 우연들이 우리를 덮친다. 만약 아무 것도 없이 정글에 던져졌다고 생각해 보자. 나의 달리기 실력보다는 지나가던 맹수가 얼마나 굶주렸느냐가 내 생존을 더 좌우한다.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어차피 내가 결과를 컨트롤할 수 없다면, 결과를 가지고 일희일비하거나 나는 운이 없어, 하고 자책하기보다는 일상의 조그만 행운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시도들에 더 집중해야겠다.
MLB의 오타니 선수는 행운을 높이기 위해 매일 쓰레기를 줍는다고 한다. 그도 그 행위 자체로 대단하고 특별한 행운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일상에 스며들고, 이를 통해 좋은 우연들이 겹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나도 결과보다는 과정, 그 과정에서 내가 하는 작은 행동과 말, 노력에 좀 더 의의를 두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로또도 당첨...아니 행운이 깃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