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히지도, 너무 설익지도 않은 인간관계
나는 계란 프라이를 좋아한다. 흰 밥과 김, 김치에 계란 프라이만 있어도 내게는 훌륭한 정찬이 된다. 어떨 때는 한 번에 10개도 거뜬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계란 프라이도 조리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머릿속 계란 프라이의 종류가 단순히 완숙/반숙의 두 가지만 있었던 나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게 되면서 프라이를 만드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군들은 식당 조리사 분들께 원하는 계란 조리법을 직접 선택해 주문한다. 선택할 수 있는 조리법은 ‘써니사이드 업’, ‘오버이지’, ‘오버하드’, ‘스크램블’ 등이다.
계란의 한 면을 적당히 익힌 다음 노른자를 깨지 않고 요리를 완성하는 방식이 ‘써니사이드 업’이다. 그리고 한쪽을 익힌 다음 한번 뒤집어서 살짝 익히면 ‘오버이지’, 뒤집어서 노른자를 완숙으로 익히면 ‘오버하드’ 다. 끝으로 노른자를 터트려 흰자와 완전히 섞어 요리하는 건 ‘스크램블’이다.
살짝 익힌 반숙을 좋아하는 나는 오버이지를 주로 선택했다. 써니사이드업은 살짝만 건드려도 노른자가 툭 하고 터져버려 조금 부담스럽고, 완숙인 오버하드는 노른자의 수분이 사라져서 계란 특유의 촉촉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택을 주저했던 건, ‘써니사이드업’이라는 이름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계란 프라이의 동그랗게 볼록 솟은 노른자를 해라고 표현한 작명 센스가 너무 멋지다. 덕분에 써니사이드업도 가끔 내 선택지에 들어가곤 했다.
군대를 마친 이후에도 혼자 끼니를 때우기 위해 직접 계란 프라이를 요리한 날이 가끔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오버이지를 시도했다. 식용유를 팬에 두르고 달궈지면 계란을 살짝 깨트려 올린다. 이때 노른자가 안 터지게 계란을 올리는 게 포인트다. 노른자가 처음부터 터지면 흰자가 노른자를 앞뒤로 포근하게 감싸는 오버이지 방식은 물 건너가기 때문에, 항상 계란을 깰 때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자글자글하는 소리가 나고 계란이 조금씩 익는 듯하면, 이제부터는 ‘언제 계란을 뒤집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너무 빨리 뒤집으려고 뒤집개를 들이밀면, 흰자들이 아직 채 익지 않아 형태가 부서지고 엉망이 된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뒤집으면, 뒤가 바짝 익고 타버리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 뒤집개를 계란 프라이 밑으로 쏙 집어넣는 것이 내게는 항상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너무 급하게 뒤집개를 밀어 넣다가 계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흰자가 분리되고 노른자는 터져버린다.
이게 숙달된 전문가와 초보의 차이인가 보다, 하고 실망하면서 나는 계란을 휘휘 휘저어 결국 노른자와 흰자가 애매하게 섞인 스크램블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한다.
우리네 관계도 그렇다. 술자리든, 식사자리든, 카페나 혹은 공원의 벤치에서든,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할 때면 우리는 대부분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근황을 얘기하고, 일상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일은 마치 계란을 조심스럽게 팬에 올리는 일과 닮았다. 그리고 계란 프라이를 완성하듯, 대화를 하며 상대방과 생각을 조금씩 동기화한다.
처음 우리는 오버이지를 기대한다. 좋은 사람과 오래간만에 만나 약속을 잡은 날은 더욱 그렇다. 일상적인 주제로 가볍게 시작한 대화지만, 조금은 진지하고 현실적인 얘기도 곁들어가면서 적당한 수준에서 노른자가 노릇하게 익기를 기대하는 탓이다.
하지만 간혹, 아니 꽤 많은 경우에, 가볍게 시작한 대화 도중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무리하게) 뒤집개를 들이밀어 분위기가 나빠지기도 한다.
‘내 생각은 이래.’, ‘난 이런 부분은 네가 고쳤으면 좋겠어.’, ‘근데 너 저번에도 그러지 않았어?’와 같은 말들은 당신과 내가 기분 좋게 조리해 가던 흰자를 흩트리고 노른자가 풀렁, 하고 깨지게 만든다.
그러면 우리의 대화는 마치 스크램블처럼 혼탁해지고 부슬부슬해지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음식을 망치고 못 먹을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욱 하는 성격에 잘못된 말 몇 마디로 수년간 이어온 친분을 잃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못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인간관계인 탓이다.
몇 차례 계란 프라이를 망치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억지로 계란을 뒤집지 않기로 했다.
완벽히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면 어떠한가. 보기에 예쁘고 이름도 재미있는 써니사이드업은 밥 위에 올려놓고 간장과 참기름을 슬쩍 뿌려 슥슥 비벼먹기에 최고인데.
그래서 당신과 나의 관계도, 조금은 긴장을 풀고 조리해 보겠다고 결심해 본다. 오버이지 하다가 스크램블 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가볍게 써니사이드업 해 볼 예정이다.
그러다가 조금씩 실력이 쌓이면, 오버이지든 오버하드든, 하트 모양, 별 모양 계란 프라이든 내가 원하는 계란 요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