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새로운 만남에는 충분히 에너지를 쓰기

by 정이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낯가림이 심한 나 같은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때로 고역에 가깝다.


하지만 직장에서 HR 업무를 하면서는 불가피하게 초면인 사람과 장기간 대면해야 할 경우가 생겼다. 채용설명회 부스에서 학생들에게 회사 소개를 한다거나, 생판 처음 보는 타 부서 사람에게 HR 이슈를 꼬치꼬치 물어보는 류의 일들은 항상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비단 HR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PT를 하거나 외부 사람과 첫 미팅을 하는 일들은 여느 회사원이라면 언제나 겪을 수 있는 난관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능력자들이 있다.


새로운 만남을 성공적으로 넘기는 것이 어려웠던 내게 그런 분들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외부로 나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술술 대화를 잘 이어나가는 영업 전문가들을 보면 존경심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멋지고 부러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시장이나 마트 매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각종 논리(?)로 설득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파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다.


물론 비즈니스맨들의 영업능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없는 능력이니까. 하지만 대기업 명함과 차려입은 정장이 없이도 물건을 팔아 내는 분들의 능력이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에게 그런 일을 맡기면 도저히 잘 해낼 자신이 없다.


또 회사에서 영업으로 성공한 임원들을 가끔 만나면, 의외로 털털하고 소박해 보이는 스타일이 많았다. 추측컨대 정말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젠체하거나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상대방의 동네로 찾아가 곱창에 소주를 한잔 기울이면서 사람 사는 얘기를 같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나더러 영업을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주를 한잔 하며 기분을 맞춰주고 형 동생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간관계를 형성해 보라고 한다면? 윽, 절대 쉽지 않다.


정말 좋아하고 친한 사람과도 대화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고, 또 듣기보다는 내 얘기를 하기에 급급하다. 하물며 모르는 사람에게 진심을 연기하고 의기투합하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사람과 사람이 새롭게 만나는 것은, 하나의 우주와 다른 하나의 우주가 만나는 것과 같다.


수십 년 동안 다른 길을 걸어오던 두 사람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한 테이블에 앉아 마주하며 차를 마시며 서로를 탐색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방어하고 또 융합하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고 숭고한 상호작용이다.


우리가 처음 만나 보낸 오늘의 5분은, 결코 단순한 5분이 아니다. 이 만남을 위해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고, 각자의 발자취가 이어져 비로소 만났다.


또한 이 작용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파생시킨다. 비록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 회사에서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 때로는 연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과정에 더욱 진지하고 엄숙하게 임해야 한다. 베테랑 영업인이 아닌 따름에야, 또는 매대에서 물건을 파는 전문가가 아닌 따름에야, 새로운 사람과의 첫 만남에는 충분히 에너지를 써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고 충분히 몰입하며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등한 우주로서의 상대방과 나의 위치를 인식하고 차츰 무장해제하는, 지루하지만 필수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우리의 만남 만남에 서로의 눈빛을 조금씩 맞춰간다면, 언젠가는 내 마음을 네게 팔 수 있을 있으리라 믿어 본다.


또는 언젠가 이 관계가 종결되더라도, 이런 과정은 우리 두 우주가 만나 다다를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점지해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각자의 삶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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