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설계

즉흥적이고 현재 중심의 관계보다는, 준비되고 방향성 있는 관계를 지향하기

by 정이든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우연히 이런 인상적인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충신과 간신이 같은 능력으로 싸우면 반드시 간신이 이긴다. 충신은 나라를 어떻게 바로잡을까를 고민하지만 간신은 충신을 어떻게 꺾을 것인가만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 댓글은 많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베스트 댓글에 올라와 있었다. 아마 정치 섹션이었던 것 같다. 고루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어떤 기사였는지 기억도 안 날뿐더러, 누구를 충신으로, 누구를 간신으로 의도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다만 이 댓글이 인상 깊었던 점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팩트’라는 점이었다. 의도를 갖고 타인을 상대한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는, 필연적으로 역학관계의 불균형이 수반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비밀을 인지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목적성을 갖고 타인을 대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효과가 있다. 이렇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방식을 나는 ‘관계를 설계한다.’ 고 표현하곤 한다.


관계 설계자와 비 설계자가 만나게 되면, 둘의 관계는 결국 설계자가 설계한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설계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는 인간관계가 많아질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들이 주고받는 말만으로는 관계의 본질을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팀장과 친해지기 위해 팀장이 좋아하는 회식장소를 찾아본다거나,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의 취미나 자주 나타나는 장소를 알아보는 것, 이 정도는 건강한 설계이다.


그러나 이 방식의 파괴력에만 집중해 설계를 남발하는 사람도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목적성에 따라 쉽게 말을 바꾸기 때문에, 상대방도 숨겨진 의도를 깨닫고 그를 멀리하거나 배척하게 된다.


또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상대방에게 내 방식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이성 관계에서 이런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스토커가 된다. 상대에게 전략 없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은 설계도가 없이 막 삽을 푸거나, 또는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설계 방식이 맞다는 착각을 한다.




관계 설계가 가장 무서운 때는 인간관계와 심리에 도가 튼 베테랑이 설계를 할 때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예상하고 있다. 행동 패턴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자신의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한 최적화된 전략을 활용한다. 사람을 잘 믿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데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관계 전문가의 관계 설계는 무자비하게 그 파괴력을 발휘한다.


보이스피싱이나 사기꾼 같은 악당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순진한 사람들을 꾀어내어 돈을 얻어내기 위해 그 사람과의 관계 설정을 미리 치밀하게 설계한다. 보이스피싱을 하는 악당들은 준비된 패턴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통계적으로 반드시 발생하는 1~2명의 불쌍한 피해자가 현혹되게 만든다. 사기꾼들은 처음부터 돈이 많은 누군가를 노려 접근하고, 그들의 호감을 산 뒤 결정적인 순간에 신뢰를 저버린다.


그런 악당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과하게 친절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짜인 의도가 없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악용하지 않는다면, 관계 설계는 살아가는데 매우 좋은 도구가 된다. 관심 있는 이성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내어 미리 맛있는 식당을 알아놓는다거나, 좋아하는 가수를 알아내어 우연히 공연 티켓을 구한 것처럼 접근하는 정도. 이 정도는 귀엽지 않나?


즉흥적이고 현재 중심의 관계보다는, 준비되고 방향성 있는 관계를 지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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