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먹을래?

사소한 결정이라서 임의로 선택한 선택지가 나를 특정하지 않는다면

by 정이든

오늘 아침 출근 후, 여느 때처럼 직장 후배와 지하 커피숍에 들렀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배가 꼬르륵하고 소리를 냈다. 동료가 슬쩍 웃는다. 아침을 못 먹은 탓에 허기가 졌나 보다.


우리 회사 지하 카페테리아에는 아침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다. 샌드위치와 샐러드, 빵, 김밥 같은 것들이다.


"저번에 네가 샀으니까 이번엔 내가 한번 살게. 배고픈데 커피 말고 뭐 더 먹을래?"

"그래요. 뭐 먹을까요?"

"음..."


잠시 진열대를 스캔한다. 각각의 음식들은 각각의 맛이 있다. 어느 걸 골라도 딱히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맛있는 음식들이다.

"글쎄... 음... 샌드위치 먹을래?"


사실, 어떤 음식이든 상관은 없다. 딱히 꼭 이걸 먹어야 돼! 하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맛은 다 거기서 거기니. 그냥 주사위를 던졌는데 3이 나오듯, 오늘은 그냥 샌드위치를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순간, 후배에게는 내가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비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도, 모든 일에 주관이 있을 순 없다. 하물며 나같이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더하다. 주관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사소한 결정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결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이렇든 저렇든 내게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다고 중요한 일을 잘 결정해내는 것도 아니다.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 전전긍긍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또는 작은 차이로 인해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호불호가 강하지 않은 성격 덕분에 잘 감내해내는 성격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을 예로 들면, 나는 사실 후배가 김밥이나 샐러드를 먹자고 했더라도 (내가 샌드위치를 먹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더라도) 크게 불쾌하거나 속상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샌드위치를 먹었으며, 심지어 맛있었다. 사실 아무 숫자나 상관없어 주사위를 던졌고 단지 샌드위치가 걸렸을 뿐인데.


'나는 샌드위치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거 골라. 하지만 너도 딱히 댕기는 음식이 없으니까 나한테 물어본 거겠지?'


라고 말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굳이 내가 '샌드위치 먹을래?'라고 말한 건,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엇을 결정하든 빨리 결정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게 효율적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결정이라서 임의로 선택한 선택지가 나를 특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중요하지 않은 선택에 빨리 주사위를 던졌을 뿐이다.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고민해보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또는 꼭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그래서 결국 샌드위치가 아닌 샐러드를 고르고 '아, 샌드위치 먹을걸' 하더라도, 내가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을 위한 선택을 했음을 이해해주는 누군가와 아침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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