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대에 대한, 상대의 나에 대한 기대를 의도적으로 낮추기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관계의 갈증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끝없이 기대하면서 화도 내고 토라져도 본다. 하지만 결국 상처 받는 건 나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상대에게 우호적일수록 커진다. 커진 기대감과 현실의 괴리는 때로 감정을 잠식해 모진 말을 내뱉게 한다. 다름과 틀림을 혼동해 내 멋대로 설정한 기준에 상대를 재단하고, 그건 틀렸다며 내 생각을 종용한다.
반면에 기대치가 낮을수록 상대가 내게 주는 영향도 적다.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나와 생각이 약간 달라도 낮은 기대는 금방 충족되는 탓에 그 사람은 내 고민거리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기대를 낮추는 방식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 대신 그 사람을 수용하게 한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그러하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조금은 나에 대한 기대를 줄여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반대로, 상대의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생각해 봄직한 문제다. 너무 열심히 일하면 더 일을 받게 된다. 첫 기념일에 연인에게 준 비싼 선물은 다음 기념일에 더 큰 기대로 연결된다. 의도적인 기대 낮추기는 역설적으로 기대를 보다 쉽게 충족시키는데 유리하다.
다만 너무 급작스럽게 기대치를 낮추는 방식은 조심해야 한다. 서로의 관계 악화가 의식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관계의 연결고리가 부러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조금씩,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시도해야 한다.
나는 한동안 나 자신의, 나의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상대방의 나에 대한 기대를 낮춰가며 관계에 요령을 부려왔던 것 같다. 이렇게 기대를 낮추는 방식은 유의미하게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기대의 낮음이 관심의 낮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더라.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음은,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것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좋은 방법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하는 정도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언제든 실망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