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휩쓸린 사람들

같은 그림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던 우리

by 정이든

어느 한가한 주말 늦은 오전에, 친구 K와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하늘이 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고 선선한 날이었다. 우리는 성북동 어느 모퉁이에 있는 조용한 갤러리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아이스라테를, 그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침에 커피,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라테를 마시면 온몸의 신경이 톡톡 터지면서 각성하는 느낌이 든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랄까? 이것은 주말도 마찬가지라서, 한 모금의 아이스라테는 오늘도 좋은 기분을 핑 전달한다.


저절로 기지개가 펴졌다.


“하우 아아 암~~”


커피 때문일까, 기지개 때문일까, 방금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던, 벽에 걸린 그림 한 폭이 눈에 들어온다. 아, 여기 갤러리 카페였지. 나의 시선을 따라 K의 시선도 옮겨 간다. 우리는 동시에 그 그림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림은 유화였다. 바다로 보이는 푸른 배경에 사람들이 헤엄을 치는지 춤을 추는지 몸을 이리저리 굽힌 상태로 가운데에 있는 큰 바위를 둘러싸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바위 위에 올라가 매달려 있기도 하고,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듯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의 얼굴은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린 것 같아.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아?”


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K가 말했다.


“나는 바위 근처에서 헤엄치면서 놀고 있는 것 같은데. 평화로워 보여.”


사뭇 진지한 K의 말에 나는 다시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 그림이었다. 분명히 내가 처음 봤을 때는 허우적대던 사람들의 괴로운 모습이 잠시 평화롭고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화를 이어가던 우리가 같은 그림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한다.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을 찾아낸 것은 내 마음이 잔잔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오늘 날씨가 우중충했던 탓일까.


분명한 건, 거센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기보다는, 일 걱정 없는 어느 날 그루 비한 노래를 틀어놓고 바위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이다. 나는 억지로 인생의 척박함을 집요하게 찾아내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소 감정이 요동침을 피해 본능적으로 잔잔함을 갈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그리고 바다 앞을 헤쳐나가기 위해, 또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손과 발을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고요한 바다에 파동을 만들어내듯, 수많은 사람들의 허우적댐이 조용한 주말 카페의 아이스라테와 함께 내 마음속을 파고든다. 맞다. 사실은 언젠가 억지로 요동쳐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마음속은 시끌벅적한 반면 누군가는 평범하고 잔잔한 마음일 수 있다.



또 다른 날에 와서 이 그림을 본다면 나도 다른 느낌을 느끼겠지. 그리고 이왕이면 그날에는 즐거움이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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