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제이 Oct 23. 2022

계테크스터디 #3
조금 치사해도 괜찮아

인간관계 마인드셋 제안

  스터디에서 관계를 스터디해야 하는 목적과 방식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스터디에서는 인간관계 맺기의 근간이 되는 마인드셋(Mind-set)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회사로 따지면 비전, 슬로건 같은 것이고, 가정으로 따지면 가훈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관계에 임한다. 나 또한 그렇고, 당신도 당신의 생각을 관통하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스터디를 포함해 계테크스터디에서 내가 제안하는 생각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당신이 내 의견대로 생각을 바꾸기를 종용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해 보고, 납득되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씩 인생에 적용해보길 기대할 따름이다. 특히 오늘 이야기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당신이 조금 손해보고 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생각해 주기를 기대한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마인드셋은 ‘조금 치사해도 괜찮아.’다.


 축구경기를 보면 이기는 팀이 시간을 끄는 경우가 있다. 살짝 부딪히고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다가 휘슬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상대편 입장에서는 무척 얄밉고 치사한 행동이지만 이기는 팀 입장에서는 이해가 된다. 1분, 2분씩 누워 있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10초 정도 잠깐 뒹굴거리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 작은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는다면, 조금 치사해 보여도 잠깐 시간을 끌어서 이기는 게 나을까, 아니면 정직하게만 플레이하다가 패배하는 게 나을까? 나는 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정정당당한 패자보다 현명한 승자에게 더 유리하다.


 연인 관계에서도 그렇다. 무조건 헌신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매일 데려다주다가는 나중에 피곤해서 하루 안 데려다줬다고 욕먹기 십상이다. 길게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와 상대가 덜 서운해할 범위의 경계를 찾아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 피곤해도 피곤한 척도 좀 해보고 말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살짝 생색이라도 내 보자


 잘 나가는 임원, 팀장들을 다년간 관찰해 본 결과, 보살처럼 이타적이거나 매사에 솔직 담백한 사람은 없었다. 항상 친절하거나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 상대에게 본인 패를 다 보여주는 사람들은 결국 실속을 못 챙기고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다. 물론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도 매 순간 이기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인보다 약자에겐 관대했으며, 사석에서 젠틀하여 이미지 관리도 잘했다. 대신 그런 모습이 필요한 장면이나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모두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고 치사한 면모를 드러냈다. 성품이 좋다고 소문난 한 사업부장은 본인에게 손해가 조금이라도 생길 것 같은 상황에서는 차갑게 돌변하거나 미묘하게 이기적인 언행으로 손해를 방지하여 자신의 자리를 수성했다. 




 A팀장 이야기를 할까 한다. A팀장은 지금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명이다. 업무 경험이나 지식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모두들 그의 아이디어와 업무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다만 그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는데, 능력이 출중한 탓에 주변 팀장들에게 항상 시기 질투를 받으면서도 주변에 자신의 편을 만드는 데 소홀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직속 상무가 바뀌고 나서 득달같이 새로운 상무 라인을 탄 주변 팀장들에게 밀려 몇 개월 뒤 한직으로 물러났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자면, A팀장이 검토하던 새로운 HR 제도에 대해 새로운 상무가 탐탁지 않아했는데, 그 이유는 제도 신설에 따른 재원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팀장은 새로운 상사의 스타일에 맞춰 제도의 내용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으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기존에 실무자들이 보고서를 거의 마무리하려는 단계였으며, 상무의 의견이 비합리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팀이 겪은 그동안의 수고를 새로운 상무가 알아주길 바랬고, 동시에 보고서에 대한 믿음도 꺾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상무와 (대놓고 대들지는 않았으나) 은연중에 논쟁을 하고 고집을 부렸다.


 다른 계열사에서 넘어온 탓에 회사에서의 입지가 강하지 않았던 그 상무는 A팀장이 자신에게 회사에서 떠돌아다니는 주요 이슈나 정치적 신호들을 전달해 주길 기대했던 듯하다. 그러나 본인이 관심 없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주야장천 이야기하는 A팀장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파악한 다른 팀장들은 옳다구나 하며 A팀장에게 등을 돌렸고, 연말 인사발령 때 A팀장은 한직으로 물러나고 A팀장의 자리는 B팀장이 대신 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A팀장님을 여전히 존경한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A팀장에게 들어보니, 그는 먼저 일로 인정받고 싶었으며 사실 상무가 너무 강압적이었기에 반발심도 살짝 있었다고 한다. 나는 A팀장의 행동을 이해한다. 오히려 후배로서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일로 승부하기 전에 상무와 대화를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일단은 굽히고 나서 다시 일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또는 평소 주변 팀장들을 포용하여 본인의 입지를 강하게 해 두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약간의 치사함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새로 온 B팀장은 무척 정치적이었다. 예를 들면 누가 봐도 상무에게 혼날 수밖에 없는 회의가 있을 때 본인은 살짝 빠지고 일부러 실무자를 보냈다. 상무에게 영혼까지 털린 실무자가 자리로 오면 B팀장은 실무자를 불러서 위로는커녕 오히려 상무에 빙의하여 실무자의 잘잘못을 따졌다. 본인이 팀장이면 실무자의 일도 본인의 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젝트보다는 회사에서 돌아가는 가십거리, 정황 같은 것들을 상무에게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상무와 쿵짝을 맞추며 승승장구했다. 


 B팀장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책임은 벗어나고 권리는 챙기는 ‘과하게’ 치사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세상엔 B팀장 같은 사람, 아니 더 심한 사람도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치사하다. 극단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당신과 내 주변에는 없을 테니 꿈꾸지 말자. 정말 사람 좋아 보이는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본인 실리를 따지기 마련이다.


 무조건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은 결코 건강한 방식이 아니다. 조금. 조금은 치사해도 된다. 다들 그렇게 산다. 너무 타인에게 맞추며 양호하며 신경 쓰며 살지 말자. 서 있는 사람이 없으면 버스 노약자석에 잠시 앉아도 된다. 팀원이 휴가 날짜를 먼저 점찍었다고 내가 꼭 양보할 필요는 없다. 연인의 문자에 답장하기가 너무 피곤하면 가끔은 살짝 잠든 척해도 된다. A팀장처럼 정공법만 취하다가 B팀장 같은 사람들이 기회를 잡게 하지 말자.


너무 맞추기만 하지 말고,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오해가 있을까 봐 첨언하는데, 조금 치사하게 사는 것의 핵심은 ‘치사함’이 아니라 ‘조금’에 있다. 과하지 않게, 조금만 치사하자. 절대로 남에게 피해가 가거나 불법적인 짓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교양인이 아닌가? ‘조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치사하게, 이기적으로 사는 순간 우리는 사람을 이용하거나 가스 라이팅 하게 된다. ‘너무’ 치사하게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당장에는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절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실패하게 된다. 물론 계테크가 아닌, 재테크에서라면 모르겠다. 돈만을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방식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러나 인간관계는 다르다. 상대를 기만하고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한두 번 상대를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잃는 것이 더 많게 된다.


 너무 치사한 사람이 되지 않되, 그렇다고 우리 주변의 너무 치사한 사람들에게 당하고 살지도 말자. 이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도덕 교과서 같은 삶을 보내려 해서는 안된다. 제발. 요령껏 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치사하다. 치사한 사람들의 무리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할 때 치사할 줄 아는 영리함이 있어야 한다.


 사명감에 죽어라 야근하면 번아웃 온다. 내 삶을 모두 버리고 가족에게만 헌신하다 헌신짝 될지 모른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남보다는 나 자신을 챙기자. 그래야 롱런할 수 있다. 맨날 귀찮게 자기 이야기만 하면서 연락하는 친구에게는 가끔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그 누구보다 당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길 바란다.


당신은 당신으로서 소중하니까요


 치사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나도 조금 치사한 방법을 활용해 보자. 아까 말한 B팀장의 함정 같은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면? 팀장이 자신을 억지로 보냈다는 사실을 티 나지 않게 어필하면 어떨까? 아니면 불쌍한 척을 해서 사람들에게 동정표라도 얻는 건? 또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팀장에게 문제제기를 하고, 다시 그런 일이 번복되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이건 상대와 상황을 봐가면서) 무엇이 되었든, 그냥 우직하게 당하고 있지만 않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공정’을 외친다는 것은 사회가 이기적이고 불공정하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다들 그렇게 무리를 형성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 사람 좋은 사람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성향이 바뀌어 가며, 궁지에 몰리거나 돈 앞에 서면 갑자기 치사하게 바뀌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는 치사하다. 우리도 조금은 치사해져도 괜찮다.


 '조금만' 치사한 사람들이 모여서 '조금만' 이기적인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조금씩 인정하여 역설적으로 공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치사한 세상에 치여서 당신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이기적이고 언제나 당신의 행복을 우선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나의, 당신이 당신의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 같이 잘 지내고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다.

이전 04화 계테크스터디 #2 기교보다는 경향성에 집중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