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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Sep 08. 2024

새벽을 걷는 소리

[새벽을 걷는 소리] [노트와 낙서와 진지함]


[새벽을 걷는 소리]


 이른 아침, 이슬들이 여전히 풀잎에 흘러내리던 공원 산책길을 혼자 산책했다. 새벽을 걷는 소리는 습기를 머금어 눅눅해야 것인데 청초하였다. 숨을 때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박타박 울리는 걸음 소리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주변을 깨우고 있다.


 무엇이든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성공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쉬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결론은 당연히 남들보다 더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음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더 나아지려는 노력은 새벽 산책길을 전력질주 하는 것과 같이, 의미 없는 꽃말에 억지로 의미를 만들려는 발버둥이다.


 *


 [노트와 낙서와 진지함]


강연을 듣고 있었다. AI가 바꿀 미래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틈틈이 노트에 필기를 하며 경청하였다.


 세상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고 우리는 다양한 변곡점을 지나 몇 차례의 불쾌한 골짜기를 넘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유쾌할지도 여전히 불쾌할지도 모른다. 마냥 좋은 미래라고 볼 수 없는 가치중립적일지도 모를 미래.


 노트에 필기를 하던 내 손은 어느새 낙서를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웅장한 내용과는 상반되게 나는 장난 삼아 동그라미 몇 개로 얼굴을 그리다가, 내 사인을 휘갈겨 써 봤다가, 또박또박 아무 의미 없는 '수박'이라든가 '연필'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런 바보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가, 더 바보 같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잠시 펜을 멈춘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내 반성해야 하는 걸까? 글쎄, 생각의 반추는 중독적이고 소모적이다. 


실상은 그렇게 진지해질 필요가 없는 순간에도 진지함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은 그래도 내가 남들보다 하루를 진지하게 충실하고자 하는 시도라 위안을 삼아 본다. 덕분에 익살스럽고 흥분된 삶이 우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밸런스가 유지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AI와 자율주행차와 또 다른 기술들이 가져올 편리한 미래가 우리의 진지함을 앗아가지 않도록, 흐르는 물결에도 잠시 버틸 수 있는 온전한 나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 그렇게 강연이 끝나 노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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