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의 일기]
[2024년 12월 22일의 일기]
글을 꾸준히 쓰기란 어렵다. 정이든씨가 되어 일요일마다 1편씩 글을 발행하기로 결심한 것이 올해 9월이니, 그래도 3개월 이상은 꾸준히 글을 써 온 셈이다. 누군가는 고작 3개월이라 할 수 있겠으나 주말마다 피곤해병이 도지는 만성피로 직장인인 나에게는 이것도 무척 큰 성과라 자축하며 오늘은 조금 편안하게 일기스럽게 글을 써보려 한다.
직전 주말에 쓴 '당신은 늘 빛나고 있음을'이라는 글은 긴 운전을 이틀 연속 하고 방전된 상태에서 작성했다. 1주일이 흘러, 오늘 다시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읽어보니 오마이갓,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주술구조가 어색하고 문맥도 이상하다. 그래서 부분 부분 뜯어고치고 새롭게 발행했다. 한번 발행했으면 끝이지, 아무래도 낙장불입이라는 걸 모르는 정이든씨다.
다시 읽어본 글이 왜 그리도 못 쓴 글처럼 느껴졌을까? 지난주에 읽었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아무래도 피곤한 상태에서 쓴 글이라 그랬을 것 같다. 억지로 잘 쓰려고 하다 보니 글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해질 수밖에. 그러면 앞으로 피곤하면 글을 쓰면 안 되나? 그렇다면 1주일에 한 번씩 쓰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은 어떡하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너무 완벽하게 글을 쓰려고 하는 나 자신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가도 되는데, 정이든씨는 항상 풀 정장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외형의 완결성이 좋은 글을 담보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잘 읽히고 흥미로운 글이라면, 진솔함이 묻어나고 울림만 있다면 투박해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따뜻한 글을 쓰자. 문맥, 논리구조, 표현 같은 것들에 너무 압도당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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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족한 모습을 알아채고 개선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주요하게 채택해 온, 정이든씨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지금 어떻게 바뀌어야 하지?'를 많이 고민한다.
반대급부로, 고치려던 부족한 영역에서 실수를 반복하면 실패감을 많이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낙장불입인 줄 알면서 저지르고 나서 수습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한다. 그래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물론 잘 안 바뀐다. 계속 노력하는 과정들에 의의를 둬 보는 거지.
사람은 바뀔까, 바뀌지 않을까? 사람은 바뀐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사람은 바뀔 수 있고 누구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가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예전에 잠시 포착했던 타인의 한 단면만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똑같은 패턴으로 행동하면 '에이~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프레임을 더 강화하는 식이다. 그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훨씬 복잡한 존재다. 다른 사람은 안 바뀐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본인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다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어떤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보통의 상황에서 사람은 짧은 시간에, 크게 바뀌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10년 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더 이상 그때만큼 좋아하지는 않듯이 우리는 천천히,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뇌의 가소성이 떨어져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는 크게 증가하고, 살아온 방식들이 고착화되어 그저 자율주행하듯이 하루가 흘러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것은 사람마다의 차이다. 우리는 누구나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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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보니 또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내용을 쓰고 싶은데 어쩐지 글만 쓰다 보면 과하게 차분해진다. 너무 몰입한 탓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러고 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로 했는데, 은근슬쩍 또 퇴고를 하고 있다니... 역시 고쳐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인가 보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몇 주간은 쓰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간 미처 표출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주절주절 쓰면서 참 좋았고 글도 술술 써졌다. 틈틈이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메모해 둔 탓에 지금도 여전히 쓸 주제는 많다. 하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더 잘 써야겠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겼나 보다. 처음 취지는 그냥 막 쉽게, 짧게라도 글을 써 보자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문득 다른 작가분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 궁금증을 달래기 위해, 얼마 전 발표난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들을 찾아보았다. 소설을 제외한 7편 중 3가지는 IT (AI 2, Data 1), 이다. 나머지는 고딩엄빠, 일본인 가족, 장인어른에게 100억 상속받은 사람, 덕질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을 축하하며, 그분들의 글을 모두 읽어보지도 못했기에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트렌디한 IT기술이나 누가 봐도 우잉? 할 정도로 관심을 끌만한 주제가 아니고서야 수상도 못 받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중에게 인기 있을만한 콘텐츠를 고르고 싶은 출판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평범함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시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씁쓸하다. 진정으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삶의 모습들인데 말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잔잔한 일상, 보통의 생각, 소소한 경험 같은 것들로 브런치든, 블로그든, 본인만의 노트든, 어디든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쏟아지는 글들 속에서 이런 글들이 차별성을 갖기는 쉽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평범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텍스트의 조합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대 AI의 시대에서 앞으로 더 가치 있는 것은 평범한 생각을 기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주변 몇몇 내가 아끼는 지인분들께 이 브런치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다. 그분들이 가끔 들러 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아마도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나의 소소한 생각들일 텐데, 나는 너무 잘 쓰는데만 급급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조금 내려놓고 후드티 입은 정이든씨가 되어 편하게 써 보아야겠다.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을 막 쓰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꼭 주제를 미리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완벽한 글을 쓰기보다는,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흩날리는 비눗방울을 하나씩 쫓아 터트리듯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진정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저 흩날리는 것들을 쫓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연말을 맞아, 다음 주에는 혼자 조용히 사색하며 내년의 계획을 세우려 한다. 여러모로 도전적인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벌써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신을 딱 붙잡고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과, 바꾸어야 할 습관들, 이루어야 할 목표들에 대해 생각해 볼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