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다.
비 오는 하교길에 우산이 없을 때면,
아이들은 하나둘 부모님의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지나쳐 나는 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신기하게도,
막상 비를 맞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졌다.
비가 내리면 차갑긴 했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나를 감싸는 무언가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삶은 더 바빠지고 복잡해졌다.
괴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그 비 오는 하교길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홀로 비를 맞고 걸어가던 그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다.
‘겁먹지 말자.’
설령 앞으로 마주할 결과가 비참하더라도,
그때처럼 나는 결국 단단해지지 않을까.
비를 맞고 걸었던 그 길이 내게 가르쳐 준 건
결국 내성(耐性)이었다.
비를 맞고 뛰어본 적 있는가?
흠뻑 젖은 옷과 함께
어느새 마음도 가벼워지고,
차갑지만 기분은 묘하게 나쁘지 않다.
그 순간,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아마도 그건,
비를 맞는다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나만의 작은 승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