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erco en naranja | 맛있어서 더 슬펐던 점심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인데 이불에서 나오기 싫어서 꾸물거렸더니 알피가 말했어요.
"자연아, 게으르지 마"
한국말이 점점 늘어가요. 게으른 자연이가 샤워를 하는 동안 게으르지 않은 알피는 사과를 자르고 계란을 꺼내고 오븐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맛있는 아침 한 상을 차려주었어요.
아침을 먹으며 점심 이야기를 해요. 실제로 저희 대화는 이래요.
"알피야. 오늘 점심 레시피 골랐어요?"
"네. 이따가 장 보러 갈 거예요. 수업 끝나면 같이 가요"
"뭐 만들 거예요?"
"오렌지 돼지고기"
"응?"
"Puerco en naranja"
뭘 만들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알피가 만들면 뭐든 맛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돼요.
수업이 끝나고 전화를 했더니 알피가 이미 장을 보는 중이라며 집으로 오라네요. 안 그래도 약간 쌀쌀해서 집에 들러서 후드티라도 입고 나가야 하나 했는데 잘됐죠 뭐. 지금까지 알피의 홀로 장보기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돈 세는 게 익숙하지 않았을 때 혼자 나가서 홍시를 한 판 사온 적이 있어요. 너무 달고 맛있어서 얼마였냐고 물어봤는데 한참 손가락을 꼽아가며 생각하더니 "오만 원?" 이러는 거예요.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지갑에 오만 원짜리는 그대로 있었어요. 그 날 오천 원과 오만 원을 구별하는 연습을 한참 시켰죠. 이제는 이 곳 물가에도 익숙해졌고 돈도 잘 세고, 비싸면 그냥 내려놓고 오는 게 아니라 "너무 비싸요" 하고 종알거리며 나와요.
집에 돌아오니 알피는 냉장고를 정리 중이었어요.
"돼지고기 사 왔어?"
고개를 끄덕이는 알피 표정이 좀 뾰로통해요. 이제는 표정만 봐도 알아요. 자기가 원하는 돼지고기 부위를 못 구한 게 틀림없어요.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에 따르면 'Rip-end pork loin'을 사야 했어요. 저걸 번역기에 돌려서 '갈비살 로인'을 달라고 했는데 정육점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그런 부위는 없다며 돼지갈비뼈 부분을 보여주더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갈비뼈 몇 개를 사 왔는데 이게 아니라며 시무룩해져 있는 거예요. 웹사이트를 왔다 갔다 하며 찾아보니 알피가 필요했던 부위는 '뼈 등심'이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건 뼈 등심 대신 기다란 돼지갈비뼈네요. 뭐 못 먹을걸 사 온 건 아니니 레시피에 있는 소스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오렌지가 주연을 맡을 예정이에요. 준비할 재료라고는 오렌지 두 개, 오레가노 3/4 스푼, 소금, 그리고 마늘 세 알 뿐이에요. 먼저 깐 마늘 세 알에 오레가노를 뿌리고 꼼꼼히 다져요. 그리고 오렌지즙을 짜내어서 함께 넣는 거예요. 알피는 인간 착즙기예요.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서 한 손에 쥐고 즙을 한 번에 짜내는 게 신기해서 저도 따라 해 봤는데 악력이 약해서 그런지 쉽지 않았어요. 이제 소금을 적당히 넣고 잘 섞은 다음에 고기 위에 골고루 뿌리는 거예요. 알피는 오렌지 껍질도 회를 뜨듯이 잘 발라서 고기 위에 얹었어요.
"이제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오븐에 구워야 해"
한 시간 반이라니요! 당장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만두를 먹으며 기다리다가 까무룩 낮잠도 잤어요. 알피는 그 와중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오븐에서 갈비를 중간에 잠시 꺼내서 오렌지 즙을 더 뿌렸지요.
한 시간이 더 지나고 반가운 타이머가 울려요. 식탁을 차리고 있는데 오븐에서 갈비를 꺼내던 알피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게 뭐야!"
"왜 그래?"
"먹을게 하나도 없어. 뼈만 있어. 이게 뭐야"
가서 들여다보니 하하하. 기다란 뼈다귀 여섯 개가 잘 구워져 있네요. 물론 뜯어먹을만한 살점도 붙어있었지만 간에 기별도 안 갈게 분명해 보여요. 그래도 이왕 만든 거니 맛있게 먹자고 알피가 아까 사 온 복숭아에 마늘과 올리브유와 꿀, 크러쉬드 페퍼와 같이 요리해서 함께 얹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레시피는 최고였어요. 오렌지의 달콤 상큼한 맛과 짭조름한 소금 간이 갈비의 맛과 함께 어우러지니 정말 맛있네요. 그런데 슬프게도 먹을 게 참 없었어요. 갈비뼈에 조금씩 붙어있는 살을 아쉽게 음미하며 뜯어먹었어요. 뼈 등심으로 요리했더라면 아주 포식을 했을 텐데. 마지막 뼈를 다 뜯고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알피야. 배가 더 고파"
"나도"
주방을 둘러보니 설거지가 한 더미네요. 배는 여전히 고픈데 말이죠. 이걸 먹으려고 두 시간을 요리했어요.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다음에는 제대로 된 뼈 등심을 사다가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결국 저희는 김밥집에 들러서 배를 마저 채웠어요. 참치김밥을 우물거리며 알피가 말해요.
"외국인을 혼자 정육점에 보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앞으로는 정육점은 같이 가기로 했어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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