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rra en Escabeche | 너와 나의 특별한 고등어요리
5월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삼 개월 차예요. 아침 열 시. 저는 그룹운동 수업에 가고 알피는 근력운동과 유산소를 해요. 그리고 제 수업이 끝나는 열 한시에 함께 집으로 향해요. 이제는 몸 군데군데에 근육이 제법 탄탄하게 붙기 시작했고, 늘 찌릿찌릿 아팠던 알피의 발도 많이 좋아졌어요. 무엇보다도 같이 다니니까 꾀부리지 않고 꼬박꼬박 가게 되어서 좋아요.
"점심 장 보러 가자"
오늘 만드는 생선요리에는 라임과 와인식초가 필수이기 때문에 먼저 마트로 향해요. 딱 그거 두 개만 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카트 가득 이것저것 많이도 넣었네요. 무거우니까 집으로 바로 가자고 할 법도 한데 알피는 길 건너 농협 앞에서 열리는 금요장터를 기억해냈어요.
"자연아. 술떡 먹고 싶어요"
전에 이야기했듯이 술떡은 알피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떡이에요. 이제는 떡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도 저희를 알아보시고 또 왔냐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네요.
장 본 것들을 집에 내려놓고 술떡을 나눠먹은 다음에 이번엔 오늘의 주인공인 생선을 사러 수산시장으로 향했어요.
"알피야. 오늘 무슨 생선 사야 해요?"
"Sierra (시에라) 사야 해요"
시에라는 또 어떤 물고기일까요. 구글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나와있어요.
"멕시코 시에라라고도 알려진 태평양 시에라는 고등어 가족으로 더 잘 알려진 스콤브리대 (Scombridae) 족의 fin 빛 물고기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물고기는 스페인 고등어 부족 Scomberomorini의 일원입니다."
고등어라니. 잘됐어요. 여차하면 잃어버린 가족을 찾듯이 시에라 사진을 들고 다니며 "사장님, 혹시 이렇게 생긴 생선 보셨어요?"하고 여기저기 물어볼 참이었거든요. 고등어라면 시장에 널렸지요.
오늘 요리의 정식 이름은 "Sierra en Escabeche"에요. '시에라'는 고등어로 대체할 것이고, '에스카베체(Escabeche)'는 스페인어로 '식초를 사용해서 만든 요리'를 뜻해요. 에스카베체의 뒷조사를 좀 해보자면 아랍어인 sikbâg이 그 시작이에요. 아랍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식초에 저민 소고기 요리인 sikbâg을 만들어먹었는데 <천일야화>에도 이 요리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요. 그런 요리 방식이 아랍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멕시코에까지 전파된 거고요. 뭔가 전설의 고등어 요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오늘 저희가 사 온 고등어는 운이 좋은 놈이네요.
먼저 물 반 컵, 소금, 라임즙(한 개 반)을 잘 섞은 뒤에 토막 낸 고등어가 반쯤 잠기도록 부어요. 이제 한 시간 정도 냉장고에 두어야 하는데 중간에 고등어를 뒤집어서 반대편도 구석구석 스며들 수 있게 해 줘요.
사실 어제 많이 걸어서 그런지 발이 너무 피곤해서 꼼짝하기가 싫었어요. 빨리 소스를 준비해두고 한 숨 자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래서 레시피를 후루룩 읽었어요.
통후추 1/4 티스푼 - 빻는다
코리엔더 씨앗 1/4 티스푼 - 빻는다
큐민 씨앗 1/4 티스푼 - 빻는다
정향 한 개 - 빻는다
계피 스틱 약간
올스파이스 한 알 - 빻는다
마늘 두 알 - 향신료들과 함께 빻는다
와인식초 1/4 컵
물 1/4 컵
오레가노 1/4 티스푼 - 볶는다
월계수 잎 1개
마늘 10알 - 껍질을 벗겨서 굽는다
소금 적당히
설탕 1/4 티스푼
뭐가 많긴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향신료들을 마늘 두 알과 함께 빻아서 물이랑 식초를 넣고 끓이면 되는 거였어요. 이 정도면 저 혼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레시피라고 종알대면서 향신료들을 몰카헤테(Molcajete 멕시코식 손절구)에 넣고 다 빻았지요. 마늘까지 넣고 신나게 다 빻고 나서야 계피 스틱과 월계수 잎은 같이 빻는 게 아니라 끓일 때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러니까 빻으라고 쓰여있는 것만 빻았어야 하는 건데 그냥 다 때려 넣고 믹스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이렇죠 뭐. 저는 침대에 가서 엎어져버렸어요.
"안 해!!!"
알피는 괜찮을 거라고 그냥 해 먹자고 했지만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를 이렇게 망쳐버릴 수는 없어요. 게다가 계피맛 생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예요. 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향신료들을 다시 준비하고, 알피는 무거운 몰카헤테를 싱크대로 가져가 박박 닦기 시작했어요. 이미 계피 냄새가 강하게 배어버려 여러 번 씻어내야 했지요. 몰카헤테가 젖어있으면 향신료를 빻을 수 없기 때문에 급한 대로 헤어드라이어로 말렸어요. 왠지 다이애나 할머니가 코웃음을 칠 것 같아요. 헤어드라이어라니.
이번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할머니가 '빻으라고 한 것만' 빻아요. 마늘까지 함께 빻은 뒤에 물과 식초와 함께 끓여요. 계피 스틱과 월계수 잎은 이때 넣고요. 끓기 시작하면 올리브유 1/4컵과 식초 100ml와 물 150ml를 추가하고 조금 더 끓게 둬요. 이게 소스예요. (참,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에서 필요한건 와인식초예요. 하지만 와인식초라는 게 딱히 없었고 복분자 식초는 알피가 싫대서 파인애플 식초를 사용했어요)
마지막으로 라임즙물에 재워둔 고등어를 구울 차례예요.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고등어를 튀기듯이 구워내요. 다이애나 할머니는 오래 익히지는 말라고 했지만 여름이고 갓 잡아온 생선도 아니니 충분히 조리했어요. 집에서 오븐이 아닌 팬 프라이로 생선을 요리한 건 처음이에요. 다 구워진 고등어에 아까 만든 소스를 자작하게 부으면 완성이에요. 한 시쯤 요리를 시작했던 것 같은데 네 시가 다 되어서야 먹게 되었어요. 알피가 외쳤어요.
"We deserve a cold beer" (우리는 차가운 맥주를 마실 자격이 있어)
그럼요. 자격이 있고 말고요.
고등어를 이렇게 먹어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파인애플 식초의 새콤한 맛과 각종 향신료들이 어우러진 소스에 적셔먹는 탄탄한 고등어살은 꽤 새로운 조합이었어요. 특히 적양파 무침을 가득 올려서 먹으니 생선의 비린 맛이나 기름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보기에도 예뻤고요!
"이번 레시피는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어"
"나 때문에 소스 두 번 만들어야 해서 그래"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어. 계피맛 나는 고등어를 먹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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