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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02. 2019

무슨 일이 있어도 30일은 쓰자

두 번째 인터뷰이. 방송작가 김선영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현재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김선영님을 만났다. 그녀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버스를 타는 신논현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브런치에서 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전형적인 문과 학생이었죠. 책 보는 거 좋아하고 글 쓰는 거 좋아해서. 처음에는 그나마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 돼보자 생각했는데 제가 전공을 잘못 택한 거예요. (전공은 뭐였어요?) 청소년지도학과 나왔어요. 국문과 복수 전공했고. 제가 전공한 과는 수련원, 수련관에서 일하는 선생이고 알고 보니 국어 선생님이 되려면 교육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임용고시도 봐야 해서 복잡하니까 딴 거 해야겠다. 그래서 시작했죠. (웃음)


처음에는 글 관련 직업 찾다가 출판, 편집일을 발견했어요. 재밌겠다 싶어서 출판 아카데미를 다녔어요. 2달 정도 다니고 있는데, 강사님이 20년 동안 편집자 일 하신 분인데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편집자는 본인이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주목받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작가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빛나고 싶은데.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편집 일은 나랑 성향이 안 맞는 거야. (웃음) 성격이 안 맞다는 걸 느끼고. 나는 그냥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순수문학은 범접할 수 없고 먹고살기 힘들 것 같아서 다른 걸 찾아보니까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아카데미를 또 갔어요. 거기 다니면 원래는 인맥으로 보통 취업이 된다고 듣고 갔는데, 그러려면 비싼 데를 다녀야 되는 거야. (웃음) MBC, KBS처럼 유명한 방송국에서 하는. 그런데 저는 사설. 좀 싼데를 갔어요. 그렇다보니 강사분들이 인맥이 많지 않고 해서 취직이 안 되는 거예요. 안되겠다. 나는 혼자라도 찾아나서야겠다. 막내작가 구한다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갔어요. 그러다가 오라는 데 있어서 거기서 다큐멘터리 막내로 시작했죠.


나는 내가 빛나고 싶은데. 내가 주인공이어야하는데.
편집 일은 나랑 성향이 안 맞는 거야.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을 주로 어떻게 기획하나요?

방송작가는 크게 3단계가 있어요. 막내, 서브, 메인.


막내를 보통 1년 하고 서브작가로 입봉을 하면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거든요. (막내는 주로 뭐해요?) 막내는 방송 아이템 정해지면 관련된 자료 리서치하고 취재하고 서브, 메인 작가한테 보고하고 전문가 섭외나 스케줄 조율하고. 매니저처럼. 그게 힘들어서 거의 그만두는 애들이 제일 많아요. 막내 때.


막내 때 1년 정도 버티면 약간 입봉 기회가 생기는데  제 생각에는 그전에 거의 반 정도는 방송계를 떠나요. 지금은 최저 임금을 지키는 분위기잖아요. 제가 처음에 막내작가를 했던 2007년만 해도 월급이 80만 원이었거든요. 80만 원인데 쉬는 날이 없어. 저는 그나마 심하지 않았는데 제 옆에 있던 언니는 3개월 만에 처음 쉬었거든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7일을 계속 나가고 3개월 만에 처음 쉬었는데 그 돈 받고 솔직히 요즘 누가 버티겠어요. 그때는 간혹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 그렇게 막내를 하고. 이제 서브가 되면 코너가 할당이 돼요. 한 7분에서 10분 정도 되는 코너를 맡아서 취재, 섭외, 구성안, 원고 써서 PD랑 짝꿍으로 해서 방송을 만드는 거죠.  


(메인이랑 서브 차이는요?) 서브는 완벽하게 책임을 못 지니까 메인한테 한 번 검사를 받아요. 구성안이나 대본 검수를 받고 메인이 고쳐주면 그다음에 본사 회의나 책임지는 역할을 (메인이) 주로 맡죠. 코너 긴 다큐멘터리는 메인이 다 써요. 매거진처럼 꼭지들이 있는 프로그램은 메인들이 관리하는 거고, 큰 덩어리는 메인이랑 막내 둘이 붙어서 하고. 서브 없이. (나는 자연인이다 같이 쭉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메인이 다 하겠네요) 메인 4명이 해요. 막내 4명이 있어서 그 프로그램이 4주 텀인가 그렇거든요. 한 달에 한 편을 만드는 거지. 막내랑 메인 작가 둘이.


글은 원래 썼었나요?

중, 고등학교 때 국어를 제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문예부. 동아리 있잖아요. CA. 딱 그 정도 활동만 했었고, 혼자 집에서 소설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그냥 과목 중에 국어를 가장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방송작가가 업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거죠.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내 이름이 나오잖아요.
특히 막내작가를 할 때는 그게 큰 기쁨이었고.


업으로서의 글쓰기와 (브런치 같은) 사적인 글쓰기는 차이가 있나요?

저는 개인적인 글쓰기가 훨씬 좋아요. 그런데 돈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인 거고. (웃음) 업으로 쓰는 거는 어쨌든 고객이 있잖아요. 시청자가 될 수 있고, 고객이 될 수 있고 그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스타일에 그때그때 맞춰야 한다는 게 제한이 되면서도 재밌을 때도 있고. (그런데 아까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시청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방송을 하면 그래도 매번 그런 게 있어요.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내 이름이 나오잖아요. 특히 막내작가를 할 때는 그게 큰 기쁨이었고. 나중에는 보지도 않지만 (웃음) 방송의 매력은 저는 주인공이 되고 싶고, 성취 지향적인 사람인데 방송이라는 건 텀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꽤 자주 와요. 책은 집필하는데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방송은 1주일에 하나, 한 달에 하나. 그러니까 성취감을 자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데서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고 성과를 눈으로 볼 수 있잖아요. 어떨 때는 시청률도 잘 나오고. 그런 것이 되게 매력적인 거죠.


요즘은 프리랜서 작가로서 일하고 계시시잖아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세요?

지금은 TV 쪽은 안 하고 있고, 기업 사내방송 쪽에서 일하고 있어요. 기업에 보면 아침에 일 시작할 때 틀어놓는 방송 있잖아요. 그거 만들고 있어요. 그 기업과 관련된 기술 동향이나 구성원들 애사심 느끼게 프로그램을 주로 기획해요. (직원들에게 애사심 느끼게 하기 어렵지 않나요?) 저는 그런 거 쉬워요. 유혹하게 하는 거. 방송은 홀리는 거거든요. (웃음)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30일은 쓰자.
그래서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썼죠.


필사를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리시던데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필사는 2019년 4월부터 온라인 필사 모임에서 신랑 꼬셔서 같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작하는 날이 때마침 해외로 가족여행 가는 날이었어요. 첫날부터 안 하면 찝찝하잖아요. 그래서 해외 갈 때 공책을 둘 다 가져간 거예요. 해외 갈 때. 첫날은 공항에서 썼어요.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30일은 쓰자. 그래서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썼죠. 거기서는 필사 모임에서 내용을 주니까 열심히 따라 썼어요.


필사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쓸 때도 뿌듯하지만, 이렇게 모은 걸 볼 때 더 뿌듯하다고.

그러고는 한 달을 채웠어. 꾸준히 해냈다는 경험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신랑이랑 둘이 본격적으로 필사했어요. 친구도 한 명 꼬시고 (웃음) 근데 친구도 신랑을 꼬셔서 4명이서 단톡방을 만들어서 인증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매일 밤 12시 전에 인증해요. 각자 본인이 원하는 책으로 분량도 상관없고. 각자 알아서. 인증만. 내용이 좋고, 와 닿으면 의견 나누고 기본적으로는 조용한 톡방이에요. 사진만 올라가는 게 기본이고. 가끔 의견만 나눌 뿐이지 수다를 떨고 그러지 않아요.



꾸준히 해냈다는 경험이 참 좋더라고요.



필사를 하면서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나요?

필사하면 좋은 게 책을 읽잖아요. 강제로. 저는 모든 걸 다 필사하는 게 아니라 읽다가 여기 괜찮네 하면 발췌하거든요.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 더 많잖아요. 별로 쓰고 싶은 정도는 아닌 글이 많으니 계속 읽어요. 어떤 날은 10페이지, 20페이지 읽어도 원하는 문장이 안 나와. 그러면 어쩔 수 없이 20~30페이지 독서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드디어 필사할 문장을 찾았어. 그러면 거기서 멈추고 필사를 해요.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책에서 글 쓸 때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뭔가 매일매일 하는 게 있다는 사실이 꾸준함을 유지하는데. 글 쓰기도 꾸준히 해야 하니까 도움이 돼요.

 

선영님이 지금까지 신랑과 함께 필사한 노트들


(책 읽다가 와닿는 문장을 필사하는 거네요?) 저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독서모임에서 읽는 책이 있으면 따로 읽고 싶은 책을 못 읽거든요. 독서모임 책은 내가 읽는 책, 필사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가며 필사하는 거죠. (분야는 정해져 있어요?) 안 정해져 있어요.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 감성이 부족하면 감성적인 책. 글쓰기 공부하고 싶다 하면 글쓰기 책 필사하고. (필사하면서 좋았던 책이 있다면?) 몇 권 안돼요. 한 네다섯 권 되나. 요즘은 책 <생각의 탄생>을 필사하고 있는데 이따만한 책 하고 있는데 괜찮은 거 같고. 그때 김영하 소설가의 <여행의 이유>를 필사하면서 읽었거든요. 그거 필사하고 보면서 서평도 쓰고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활용이 가능한 거죠. 필사해놓으면 내가 주요 내용을 메모해놓은 거니까 글쓰기도 좋고.


기록할 때 디지털도 활용하시는 편인가요?

원래 한글을 쓰다가 노션에 관심이 생겨서 한 시간짜리 기본 강의를 듣고 배워서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편한 건 한글인 거야. 방송작가들이 다 한글을 쓰거든요. 여전히. 방송 같은 경우에는 회차별로 파일을 폴더에 모아놨거든요. 지금은 뭐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이게 정규 방송이면 몇 회 몇 회라고 하잖아요. 그때마다 쓰는 문서들이 많아요. 기획안 쓰도 구성안 쓰고 취재노트 있고. 한 폴더에 다 넣는 거죠. 어디에 있나 알아볼 정도로만 보관하는 정도예요.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방송 프로그램 폴더. 쌓인 갯수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성취를 느꼈을지!


저는 방송작가를 하면서 남들을 끌어오는데 최적화되어 있어요



올해 2월에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셨는데 구독자 느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저는 방송작가를 하면서 남들을 끌어오는데 최적화되어 있어요 (웃음) 사람들에게 되게 미안한데,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거 괜히 들어왔네' 글을 보고 다시 나갈지언정 일단 끌어올 수는 있어요. 일단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구독하는 사람이 생기는 거겠죠. 방송 글이 되게 쉬워요. 중학생도 이해할 만큼 쉽게 써야 하는데. 사람들이 소리로 인지하잖아요. 글을 못 읽잖아요. 그러니까 책은 볼 때는 이해 안 되면 다시 읽어 보기라도 하지만 TV는 나가는 순간 끝이니까. 글을 쉽게 쓰는 훈련을 많이 해요. (어떤 훈련을 많이 하시나요?) 일단 막내는 보도자료 같이 짧은 글은 쓰니까. 쓰면 선배들이 봐주잖아요. 그러면 이런 거는 고쳐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아 내가 여기서는 이런 표현 써야 하는구나. 패턴을 보면서 학습하는 거죠. 그런데 솔직히. 공부 안 하는 작가들도 많거든요. 그러면 계속 어렵게 써요. 자기가 공부한 만큼 되긴 하는데 어쨌든 기본적으로 방송 글은 절대 어려운 단어도 안 써요. 그래서 제 글을 보면 되게 유치할 수도 있을 만큼 쉽게 쓰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문턱이 되게 낮은 거 같아요. 제 글이.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선호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면 삶의 질은 높아져야 한다를 쉽게 고치면?) '선호하는 것'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저 같으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삶의 질은 높아져야 한다'라고 바꿀 거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삶의 질은 높아져야 한다



여전히 손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필사를 하고 밑에 내 생각을 덧붙여 써요. 그러면 일기 쓰는 느낌이 들어요. 한 구절을 쓴 다음에 내 소감을 쓰고. 항상 잠들기 전에 하니까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쓰는 느낌이에요. 또 좋은 건 (신랑이랑) 같이 하니까 좋더라고요. 나란히 앉아서. 지금은 신랑이 더 열심히 하는 거 같아요.


매일 밤 잠들기 전 책상에 앉아 나란히 앉아 필사하는 선영님네 부부


재밌는 건 신랑은 책을 안 읽는 사람인데 필사를 시작하면서 벌써 4권이나 읽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좋은 거지. 이거 써야 되니까 계속 읽는 거야. (신랑은 처음에 거부감은 없었어요?) 제가 책 읽자고 할 때는 계속 싫다고 했어요. 나는 내 취미가 따로 있으니 존중해달라고 (웃음) 근데 이게 넛지인 거예요. 필사를 하자고 하니까 이거 뭔가 나랑 쓰는 게 재밌어 보이는 거야. 그런데 막상 발을 담가보니 책을 읽어야 되네. 읽다 보니 재밌네? 지금은 그렇게 몇 권 보더니 독서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진 거예요. 너무 잘 된 일인 거지. 신랑의 성향이 나랑 뭘 하는 걸 좋아해요. 나랑 대화하고. 뭐 만들고.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전에 뭐 같이 했어요?) 수다 많이 떨고. 가구 조립 같이 하고, 요리할 때 옆에서 같이 하고. 같이 하는 걸 좋아하니까 필사도 연장선이 된 거예요. 신랑은 처음에 글을 좋아서 한 건 아니에요. (친구는?) 걔도 저랑 같이 방송작가인데 그 친구는 PD랑 결혼했어요. 얘 낳아서 이제 작가는 못하고 신랑은 PD라서 좀 바쁘니까 (단톡방에) 가끔 올리고, 그 친구는 지금도 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빨리 뭔가를 써야 할 때 여전히 손으로 기록하는 게 편해요. 물론 필사 같은 경우는 인스타에도 계속 남기고 있거든요. 인스타는 디지털 매체인데 좋은 내용을 글씨로 쓴 사진을 올려두면 뭔가 나만의 느낌? 주로 사진을 올리는 남들과 다르게, 내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올리는 게 좋더라고요. (2019.11)


지금은 그렇게 몇 권 보더니 독서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진 거예요.



김선영님은 브런치에서 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이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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