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Dec 10. 2019

정성스레 쓴 사람을 생각하게 돼요.

세 번째 인터뷰이. 디자이너 박아름 (2/2)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박아름님을 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이번 인터뷰는 총 2부로 나누어 실릴 예정이다.




사용하고 계신 문구류가 다채로워서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펜을 쓴다!’ 같은 아름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들이 주로 제가 공감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글들을 써서 올려요.  속의 내용부터 영화 대사, 노래 가사, 명언 등을 글씨로 적어서 올리고  밑에  생각들을 쓰기도 해요. 제가 손글씨를 써서 올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글씨를 보고 위로 받고 힐링 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예요.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해서 손글씨를 올리기 시작했을  어떤  분께 DM 받았어요.  필체가 너무 아름답다며 게시물 올라올 때마다 멀리 호주에서 엿보며 연습하고 있다고, 좋은 글귀로 가끔은 위로 받고 있다고 감사하다는 그런 메시지였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에 울컥 하더라고요. 저의 이런 소소한 글씨로도 위로 받고 있는 분이 계시는 구나 란 생각에 너무 감사하면서 더 신경 써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글과 글씨의 분위기에 맞게 문구류를 선택 하는 것에 있어서 더 신경을 쓰게 된 것 같아요.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체도 달리하면서 그 글씨체에 어울릴 만한 펜과 종이를 고르는 거죠. 예를 들면 어린왕자의 한 문구를 적을 때 정자체 보다는 담백한 글씨가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글씨와 어울릴 만한 적당한 필기구를 선택하는 거예요.



영어로 사랑(Love) 이라는 문구를 쓸 땐 사랑의 영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라스펜(유리로된 딥펜)(딥펜-금속으로 만들어진 펜촉을 잉크통에 찍어서 사용하는 펜)으로 부드럽게 써내려 가는 장면을 영상으로 올리기도 하고요. 옛 감성이 느껴지는 시를 쓸 때에는 원고지에 타자기글씨체로 쓴다든지 갱지에 연필로 쓰기도 합니다. 세련된 영문 필기체를 쓸 때는 날렵한 느낌의 만년필로 쓰죠.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의 느낌에 따라 그 분위기에 맞는 필기구를 선택하는 것이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손글씨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나요?

손글씨 같은 경우에는 사실 예전에는 거의 살기위해(?) 쓰다시피 한 글씨였어요. 어릴 때 나름 또박또박 잘 쓰는 글씨였는데 회사 생활을 시작 하면서 회의시간에 급하게 적어야 하고, 거래처와 전화하면서 내용들을 급하게 적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글씨가 완전히 악필로 굳어져 버린 거예요. 어렸을 때 아버지 글씨체를 보면 너무 멋있는 글씨체여서 어른이 되면 저도 자연스럽게 그런 글씨를 쓰게 될 줄 알았거든요? 현실은 그저 살기위해 급하게 휘갈겨 쓰게 되는 악필만이 남게 되더라구요.


회사에서 상품제작에 필요한 작업지시서를 작성할 때(해외로 보내는 경우 샘플과 함께 손으로 적어서 보내는 경우도 많거든요) 항상 글씨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일을 지시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름의 지위와 품격이 느껴지는 글씨를 쓰고 싶은데, 또박또박 쓰면 너무 어린 글씨 같고, 흘려서 쓰면 글씨가 볼품없어 지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책상위에 회사 물류팀 대리가 업무에 대한 내용의 쪽지를 남겨 놓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멋스러운 글씨체로 적혀 있는 거예요. 흔히들 어른글씨체 라고 하죠. 그때 글씨체 하나로도 사람이 달라져 보이는 경험을 했어요.(^^)


그때부터 나도 멋진 글씨체로 메모를 남기고 싶다 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로 마음먹고 글씨를 교정해 보자 생각하고 서점에 가서 글씨에 관련된 책 3권을 사들고 와서 무작정 글씨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게 아마 4년쯤 전이었을 거예요. 시행착오도 많았고 글씨에 대한 체계없이 휘갈겨 쓰면 왜 볼품없어지는지도 깨닫게 되면서 글씨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지더라구요. 그렇게 글씨연습을 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본격적으로 매일매일 손글씨를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 딱 1년이 지났어요. 글씨를 쓰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게 되고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쓰게 되더라고요. 주말에는 하루 종일 글씨만 쓰기도 했어요. 이렇게 무엇인가에 빠져 본적이 언제인가 싶을 만큼 저에게는 힐링이 되는게 손글씨였어요. 그렇게 시작해온 것이 지금은 저의 가장 큰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었고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제 손글씨를 올리고 있어요. 아마 손글씨는 저에게는 평생동안 함께할 동반자가 될 것 같아요.


비싸다고 좋고 저렴하다고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 필기구가 있거든요.


펜과 종이를 고를 때 가장 세심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가장 신경 쓰는  종이예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필기구가 만년필이다 보니 일반종이에 쓰면 잉크가 종이에서 실번짐처럼 퍼져요. 만년필에 쓰기 적합한 종이가 따로 있어요. 일반 유성 볼펜을 만년필용 종이에 써봤는데 너무 미끄럽고 글씨가 오히려 지저분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종이와 펜과의 궁합을 제일 우선으로 봐요. 둘의 궁합이  맞아야 글씨가 유려하게  써져요.  다음은 필기감 이예요. 비싸다고 좋고 저렴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 필기구가 있거든요. 저는 조금 사각사각한 필기감을 좋아해요. 그래야 손글씨 쓰는 맛도 느껴지고 글씨를 컨트롤 하기에 좋더라고요.  다음이 펜촉의 굵기와 펜대의 두께예요.  몸통이 너무 얇으면 오래 쓰다 보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손가락 관절이 아프더라고요.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가 손에  맞아요. 가격 같은 경우는 좋은 펜이라면 상관안하고 구입할 거예요. 아직까지 비싼 만년필은 구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글씨에 조금  발전을 느껴 이정도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구입할 계획이예요.


만년필에 쓰는 잉크통이 참 많아요. 가지고 계신 만년필과 잉크통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대부분 중저가 만년필 위주로 가지고 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에 가장 비싼 만년필이 10만원 초중반대 예요. 어떻게 보면 비싸다고 생각 하실 수도 있지만 만년필 중에서는 중 저가에 속해요. 1,000원 대부터 100,000원대까지 다양하게 써봤지만 가격보다 나와 잘 맞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만년필과 잉크의 궁합도 중요한데 만년필마다 잉크흐름을 잘 잡아주는 만년필이 있는가 하면 잉크에 따라서도 흐름이 좋냐 아니냐가 다 달라요. 잘 모르겠을 땐 그냥 만년필과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요. 아무래도 그 만년필에 가장 최적화되어서 나온 잉크일 거니까요. 기본 컬러인 블랙과 블루 같은 경우 외에는 다양한 컬러의 잉크를 써 보기 위해 소량으로 되어있는 잉크를 주로 구입해요. 딥펜(금속으로 만들어진 펜촉을 잉크통에 찍어서 사용하는 펜)잉크와 만년필 잉크가 따로 있는데 딥펜 잉크보다 만년필 잉크가 더 묽어요. 그래서 딥펜 잉크를 만년필에 사용하게 되면 펜촉부분에서 잉크가 막힐 수 있어서 꼭 만년필용 잉크를 사용해 주셔야 해요. 딥펜 에는 만년필 잉크를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아무래도 잉크가 묽다 보니 펜촉에서 잉크가 왈칵 쏟아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각각 펜의 기능에 맞는 잉크를 사용해 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이제 손글씨(또는 만년필)에 입문하시는 분에게 추천하는 만년필이 있다면?

입문용으로 가장 많이 추천되는 만년필은 라미 사파리예요. 라미 만년필의 장점은 펜촉을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만년필 하나만 구입하고 두께별로 펜촉만 구입해도 훨씬 저렴하게 모든 두께의 라미만년필을 사용해 볼 수 있어요. 가격도 적당하고 손잡이(그립) 부분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펜 잡기 교정에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삼각 그립이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입문용 만년필로 파카조터 만년필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가격대는 라미사파리 만년필 보다 더 저렴하지만 필기감은 매우 우수합니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럴과 그립(만년필 몸통)이 얇은 편이어서 오래 쓰다 보면 펜이 손 안에서 헛도는 느낌 때문에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이건 어디까지나 글씨를 오랫동안 썼을 때 느끼는 저의 불편한 점이예요. 그 점 빼고는 입문용으로는 가격대비 필기감이 아주 우수한 만년필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님이 느끼는 손으로 기록하는 ‘아날로그의 매력 무엇인가요?

짧은 문구라도 컴퓨터로 프린터한 메시지보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게 될 때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게 되잖아요. 정갈하게 쓴 글씨를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쓴 사람을 생각하게 돼요. 딱딱한 컴퓨터 글씨로 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런 것들이 저는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을 손글씨가 전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기계가 발달한다고 해도 저는 아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창의성은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컴퓨터가 손글씨를 흉내 낼 순 있겠지만 그 사람의 고유함은 흉내 낼 수 없어요. 그 글씨의 고유함은 손글씨를 쓴 그 사람만이 지닐 수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를 고수하며 아날로그 식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비단 인간의 감성뿐 아니라 손글씨와 함께 흘러가는 나의 세월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단순 날짜만 기록하고 컴퓨터로 기록하는 건 그때의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없어요. 종이에.


 손으로 직접 적으면  훗날 다시 봤을  기록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순간의 나를 온전히 보게 되는 거예요 어렸을  손으로 꾹꾹 눌러썼던 일기장을 들춰보면 그때의 온기가 느껴지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보게 되잖아요. 그런 손글씨의 변화들로  다른 나만의 세월을 기록할  있어요.  노래를 들으면  노래를 들었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처럼 내가 직접  손글씨들이 나를  글씨를 썼던 시절로 데려다  거예요. 이런 것들이 아날로그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요(2019.12)




인터뷰이 : 박아름(@단하)


1부. 나만의 세월을 기록할 수 있어요

2부. 정성스레 쓴 사람을 생각하게 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