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Oct 25. 2019

정말로 좋아서 해야, 꾸준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인터뷰이. 약사&직장인 이은희 (2/2)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예전에는 약국에서 약사로, 현재는 제약회사 학술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은희님을 만났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을지로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인터뷰는 총 2부로 나누어 실릴 예정이다.




바인더 말고 다른 (아날로그) 제품이나 보완해줄 수 있는 어플도 쓰세요?

바인더에 덕지덕지 쓰고 싶지 않으니까. 급하게 대충 쓸 거는 포스트잇에 써요. 회사에 와서 포스트잇을 처음으로 다 써봤어요. 개인적으로 쓸 때는 다 써본 적이 없는데 회사에서는 이리저리 전달할 게 많다 보니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 월간 일정은 주로 캘린더 어플 TimeBlocks로 관리해요. 바인더에서 먼슬리(Monthly, 월간 계획)는 꾸미기용으로 한 번씩 정리를 하긴 하는데 거의 안 쓰고. 아. 그나마 좋은 점은 플랜커스 먼슬리에서 맨 왼쪽에 그 주에 할 일을 적는 메모 부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물론 5월, 6월 이후로 잘 안 썼지만(웃음) 저는 이게 되게 좋아서. 업무를 계속 상기시킬 때도 좋았고 나 이때까지 이거 해야 되지. 뭔가 여기 쓰면 지키게 돼서.


"먼슬리는 한 달을 크게 조망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저번에 전자책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것도 적어놓은 다음에 실제로 구독했고, 수영 안 빠지면 나한테 선물할 거야. 예쁜 수영복. 6월에 수영장에 등록해서 물에 떠가지고 스스로 선물도 했었고. 소소하더라도 이렇게 적어두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이런 것들이 저는 좋더라고요.


회사에서 회의를 들어가거나 친구들과 약속 잡을 때 항상 바인더를 소지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때 주로 캘린더 어플을 써요. 어플은 즉각 즉각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거 같아요. 일정 검색도 되고요. 위클리(주간계획)는 그 날 그 날 기록하는 목적이 좀 더 크다면, 먼슬리는 한 달을 크게 조망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소소하더라도 이렇게 적어두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이런 것들이 저는 좋더라고요.


이은희님이 2017년부터 쓰고 있는 가죽 바인더


우울할 때 독서노트를 주로 본다고 했는데.

2017년에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서 아침에 할 거를 정해야 하는데 딱히 운동은 하고 싶지 않고 (웃음) 독서나 하자.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바인더를 넘기면서) 2017년은 53권. 2018년에는 54권을 읽었네요. 똑같다. 처음에는 모든 문구를 다 썼어요. 그래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쓰기 싫은 거예요. 노트북으로 타이핑도 해보고. 막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게 많고 플래그 해놓은 게 많으면 "아. 이거 언제 다 적어.." 약간 이런 느낌이. 고생이 보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다섯 개의 문장만 뽑아서 옮겨 적는다"

그래서 한동안 쉬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3월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유근용 작가의 책 <1日1行의 기적>을 읽으면서 "다섯 개 문장만 뽑아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 문장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그때부터 정리할 때도 부담이 없더라고요. 읽을 때는 스무 개가 넘는 문장이 너무 좋아서 막 플래그 다하고 원래 같았으면 다 적었을 텐데. 이걸 어떻게든 5개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선할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결국에 이 말이랑 저 말이랑 똑같네. 얘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네. 다섯 문장으로 추리는 과정에서 독서한 내용을 상기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요즘에는 어떤 책이 좋았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좋았고. 아! 최근에 읽었던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서 김형석 철학자님이 말씀했던 "인격은 핵심의 성실입니다." 이 말이 특히 좋았어요. 그리고 같은 책에서 노인 의학자 마크 E. 윌리엄스가 말했던 "습관이 주는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몸과 감정을 관리하세요." 이런 말들이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줄글로만 하면 또 나중에 안 보게 돼서 그중에 또 좋았던 건 색연필, 형광펜으로 칠해서 그 문장이라도 눈에 딱딱 들어오게 독서노트를 쓰고 있어요.


북스타그램도 하고 계시죠?

기록을 좋아하는데, 혼자 하기에는 제 의지가 약한 걸 알고 인스타그램에 뭐라도 한 줄이라도 꾸준히 남겨봐야겠다. 그런 재미로 시작했어요. 일단 나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 혼자 하는 거 말고.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랑 공유할 수도 있고, 나중에 사진으로 한 번에 모아볼 수도 있고. 생각보다 꾸준히 했고, 생각보다 팔로워가 많아졌어요. (2019년 10월 현재 이은희님 북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1,800명이다)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반가울 거 같아요.



언제부터 팔로워 수가 팍 늘었어요?

이 독서노트 게시물을 올리고 팔로워가 엄청 늘었다고 한다.

독서노트였어요. 이전에 팔로워 수가 많이 없었는데 언제 많아졌냐면. 독서노트 올린 이후로. 이 게시물 이후로. 533명이 좋아한 이 게시물. 유일했어요. 이런 식으로 정리한 게 사람들에게 생소했을 것 같고, 뭔가 되게 열심히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독서노트 사진을 올리고 나서 DM(Direct Message)이 많이 와서 책 추천해달라. 저 양식은 무엇인가요? 저 노트는 뭔가요? 문의가 엄청 많이 왔어요.


북스타그램의 장점은 바인더 쓰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재밌는 것처럼, 제 계정에는 책 읽는 사람들만 팔로워하니까 피드에 책 얘기만 있어서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이 책 나왔네. 저 책 나왔네. 이런 재미에 지금까지 꾸준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어디 다녀왔고 이런 사진 올리고 싶은 욕구는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책만. 계정 만들 때도 제 의지를 강하게 하고자 아이디에 book을 넣었어요. 사생활은 공개하는 걸 안 좋아해요.


인스타그램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어요. 북스타그램하고 싶어서 책 관련된 계정만 팔로워했는데 애들 사진 올라오고, 음식 사진 올라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사람들의 일상을 하도 많이 보게 되니까 원래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져서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반가울 거 같아요.


북 리스트는 어떻게 작성하고 있나요?

매년 읽은 책 목록을 기록하고 있어요. 작년까지는 양식을 썼는데 올해부터 라인 노트에 제가 직접 그려서 기록해요. (스티커는 무슨 의미예요?) 장르별로 분류해놓은 거예요. 빨간 스티커는 소설, 노랑은 에세이, 초록은 자기계발, 파랑은 경제/경영과 건강, 흰색은 인문과 교양이에요.

 

색상별로 읽은 책을 분류했던 게 인상 깊었다.

어떤 분야를 주로 읽나요?

에세이를 좋아해요. 북태기, 책 읽기 싫은 시점이 오면 에세이를 읽으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머리 안 아프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또 가볍게 읽었는데 (북리스트에) 한 줄은 채우잖아요. 또 그 한 줄을 채우기 위해 꾸준히 읽게 되는 거 같아요. 저는 그래서 손으로 적는 게 너무 좋아요. 책을 다 읽는 것도 좋은데, 한 줄 채우는 게 더 좋아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 (웃음)


저는 그래서 손으로 적는 게 너무 좋아요.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그때그때 달라요. 상황마다 끌리는 주제가 있잖아요. 읽는 책은 주로 필요에 의해서 읽는 것 같아요. 직장 생활에서 인간관계가 힘들다 보면 그거와 관련된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고. 저는 목적 있는 독서가 훨씬 익숙해요. 주로 읽는 책이 나를 힐링하기 위한 에세이, 자기계발을 위한 자기계발서. 이런 걸 주로 읽게 되고. 문학은 거의 안 읽어요. 문학은 되게 재밌고, 읽으면 이런 세상도 있구나 싶은데 막상 안 읽게 돼요.


문유석 판사님이 쓴 책 <쾌락독서>를 보면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재미와 쾌락을 위해 독서를 해오셨잖아요. 저는 전혀 반대예요. 저는 쾌락 독서는 아닌 것 같아요. 항상 목적 독서였어요. 공부하듯이. 여기선 이런 깨달음을 얻었어. 이런 거 있잖아요. 공부한 거 받아 적어놓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베스트셀러는 잘 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북스타그램의 장점이 어느 시기에 특정 책이 막 올라와요.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도 그랬고, 여기저기서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 중 좋은 게 많았어요. (출판사 마케팅이 아닐까?) 출판사 서평은 책을 후원받아서 쓰잖아요. 내가 진짜 좋아서 쓴 서평과 오묘하게 차이가 있어요. 출판사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좋았던 점을 끄집어내서 쓴 서평은.


이은희님의 북스타그램. 책을 읽고 나면 짧게 감상평을 남긴다.


"취미가 독서예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아요.


제 북스타그램 계정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몰라요. 제가 이렇게 해서 감상 남기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보는 게 너무 민망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회사에서도 제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는 있는데 평소에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아요.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책을 많이 읽으면 말도 잘해야 할 것 같고, 글도 잘 써야 할 것 같고. 이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 저는 그런 게 없거든요. 뭔가 당당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취미가 독서예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아요. 취미로 좋아서 읽기는 하지만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 수영은 말할 수 있어도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이렇게는 잘 못하겠어요. 이건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연락처 등록되어 있으면 인스타그램에 뜨지 않아요?) 연락처 연결을 안 해서 분리되어 있어요. 정말 아무도 몰라요. 근데 회사 면접 볼 때는 붙어야 하니까 자랑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책 읽는 거 좋아하는 거 어필하고, 제가 인스타 팔로워 1500 명 넘습니다! (웃음) 덕분에 회사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입 싹 닫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건 부족한 거 같아요. 한 가지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경험은 많이 못 해봤어요. 그런 걸 해야 그 책을 완벽히 이해할 거 같은데.


이은희님이 작성하고 있는 독서노트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인더를 쓰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지난날들을 돌아봤을 때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이런 게 가시화되는 그런 뿌듯함이 일단 있고요. 그리고 계획을 미리. 업무 같은 것도 한 일만 쓰는 게 아니라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어놓으니까 까먹지 않고 일처리를 하는 장점도 크고. 손으로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되서 업무할 때 큰 도움이 돼서 놓치는 업무가 많이 줄었어요.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고.


정말로 좋아서 시작해야 결국 꾸준히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요즘 출근 전에 꾸준히 수영을 다니고 있어요. 주변에도 좋다고 한 달 넘게 떠들고 다니니까. 제가 속한 본부에서만 네 명이 추가로 등록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가 수영을 하고 많이 밝아졌대요. 분위기나 표정도. 그래서 사람들도 변한 제 모습을 보고 나도 한 번 해볼까? 해서 등록했지만 그렇게 했던 사람들도 한두 번 정도 나오고 안 나오더라고요. 결국에는 무엇이 됐든 내가 정말로 좋아서 시작해야 결국 꾸준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수영이나 기록처럼요. (2019.10)



인터뷰이 : 이은희 (@ehh_bookkk)




1부. 심심하지 않아요. 바인더가 있으면

2부. 정말로 좋아서해야 꾸준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전 01화 심심하지 않아요. 바인더가 있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