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Aug 11. 2023

빨리 시도하고 빨리 망하는 게 낫다.

회사를 처음 그만둔 건 5년 전이었다. 다음 갈 곳을 정해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프리랜서로 먹고 살만큼 능력이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는데, 그때는 '지금이 아니면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용감하게 나온 것이다. 


그 선택은 훌륭했다. 정말 (그때의) 지금이 아니면 아직도 다니고 있었을지도.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개발자로 약 3년 정도 다닌 덕분에 돈은 제법 쌓여있었다. (야근도 많아서 쓸 시간도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용감해서 나온 게 아니라, 버틸 돈이 있어서 용감했던 걸지도 모른다.


2018년 3월 말에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건 (지금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3박 4일로 짧게 다녀오고 나서 다음 선택도 여행이었다. 약 3주간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그렇게 2018년에는 러시아, 태국, 제주도, 부산, 일본(시즈오카, 요나고) 등을 다니며 해외를 원 없이 다녔다. 


직장인이 떠나지 못하는 비수기 때 주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경비는 무척 저렴했다. 그래도 돈은 돈이다. 버는 것 없이 열심히 쓰기만 했다. 그래서 조금씩 불안해지더라. 특히 앞단위가 내려갈 때마다 쫄깃했다.


그때 했던 선택은 '어디 들어가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쓰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최악의 선택이었다. 차라리 모아놓은 돈을 몽땅 쓰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어야 했다.


열심히 글도 쓰고 모임도 운영했었지만 돈을 버는 일이랑은 관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할 일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만족하며 지냈다. 적응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 3개월이 지났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다른 사람의 물음에 내 직업은 매번 달랐다. 작가였다가, 백수였다가, 잠시 쉬는 갭 이어 중이라고도 했다. 스스로도 그 물음에 답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패담을 좋아한다. 그 실패담의 교훈을 통해 본인의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도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의 제목에 퇴사, 이혼, 바람, 파산, 사기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있으면 어느새 클릭하고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고 최근에 두 번째 퇴사를 했다. 지금은 디지털정리력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냈고, 강의/모임 등을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컨설팅, 서비스 기획 등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바로 사업자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쇼핑몰을 만들고 신용카드 결제를 위해 전자결제(PG)를 붙이려면 필요했다. 그래서 등록했다. 그리고 PG는 가입비가 있었다. 이후에는 매년 내야하는 보증보험료가 있다. 쇼핑몰도 월 이용료가 있다. (이용료가 없는 쇼핑몰은 부가 서비스로 비용을 뜯어낸다)


그렇다. 다 돈이다. 중간중간 아끼고 싶은 비용도 있었지만 그냥 다 냈다. 아끼면서 오래 끌 게 아니라 빨리 시도하고 빨리 망하는 편이 낫다. 5년 전에 배운 교훈이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 매출이 아닌 월 방문자(MAU)로 승부하던 스타트업들이 무너지거나 언제 무너지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떤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면서 살아남는 전략을 취하는데 그로 인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다시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 또한 언젠가 회사가 어려워지면 나도 쫓겨날 수 있겠구나라는 부담을 쥔 채로 다닐 것이다.


뾰족한 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비용을 줄이면서 오래 살아남는 전략은 조직에게도 개인에게도 크게 의미가 없다. 차라리 빨리 시도하고 빨리 망하는 게 낫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위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