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캣의 당위성
카피캣으로 판정되는 시간 3초
얼마 전 페이스북 '인디라! 인디게임 개발자 모임' 공개 그룹에서 올라온 게임을 두고 인디 개발자들끼리 자그마한 논쟁이 있었다. 사실 올라온 게임에 대한 논쟁보다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과 다른 접근으로 인한 논쟁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논쟁들도 더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하게 만들고 궁극에는 철학적인 접근을 해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진보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키워드는 '카피캣'이었다. 하지만 카피캣과 독창성을 가지고 마치 선과 악의 대립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피캣 : 독창성 = 상업성 : 예술성'이라는 비례식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현실에 좀 다른 접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쉬운 비례식이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게임을 만드는 걸까? 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모든 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며 서로를 프레임에 가두고 비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게임에 대한 비판은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의 스킬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혐오의 스펙트럼을 몇 개의 키워드로 재단하여 증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증오의 대상이 시스템이나 행위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도 누군가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도덕성이나 우월함 그리고 이념의 증명을 위하여 혐오를 소비한 건 아닌지 반성하며 글을 쓴다.
이솝우화중에 '어부와 원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런 이야기다.
어느날 원숭이가 새벽 강가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운수가 좋았던 어부는 강가에 그물을 말려놓고 한가득 잡은 물고기를 잡가지고 집으로 돌아 갔다. 이걸 지켜보던 원숭이 어부가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따라하며 강가에 그물을 던지고 거두어 올렸다. 하지만 그물에는 물고기 한마리 보이질 않았다. 그물이 잘 펴지지 않은 상태로 던져서 넓게 펼쳐지지 않아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원숭이는 그물을 잘 펴고 있는 힘껏 그물을 던졌다.하지만 그물은 원숭이의 몸에 얽히며 원숭이를 강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원숭이는 죽을 힘을 다해 강가로 기어나오며 생각했다. 그물은 여전히 같은 그물이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은 강가에 그물을 던졌는데 나는 물에 빠져 죽을뻔 했네. 왜 이런거지?
- 이솝우화 중 <어부와 원숭이>
이솝우화에는 원숭이를 소재로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솝우화에 원숭이들은 언제나 인간처럼 되고 싶어한다. 원숭이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지능이 높다. 그래서 쉽게 인간을 흉내낼 수 있고 흉내내면서 자기도 인간처럼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우화에서 인간의 자만심을 풍자하기 위해 메타포로 사용된 것이지 실제 원숭이들이 그런 자만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이솝우화에서는 이렇게 원숭이들은 인간을 흉내내면서 자만하고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죽음에 직면한다. 스스로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착각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런 경솔함은 자신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게임 산업을 비롯해 많은 콘텐츠 산업의 영역에서 이런 '원숭이 흉내내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원숭이 흉내내기는 '어부와 원숭이'의 우화처럼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업계에는 많은 전문가를 자칭하는 분석가들이 많다. 만약 자칭 전문가라며 비지니스로 접근을 하는자가 있다면 그 자를 나의 비지니스에서 최우선으로 걸러야 한다. 우리가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마켓, 마케팅, 광고 채널들은 각각의 복잡계를 유지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내가 게임을 개발하여 마켓에 올리는 순간 게이머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복잡계가 서로 얽히고 섥히는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들이 흐르고 그 흐름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같이 흘러가는게 지금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오늘 내가 분석한 데이터가 내일이 되면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영접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전문가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결국 당장 내일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시장에서 과연 전문가는 무슨 전문가란 말인가? 이런 전문가의 오만을 쉽게 설명해 주는게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이라는 영상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고정된 진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복잡계는 상대적인 영향력으로 변화하는 영역이다. 어떤 절대적인 한가지 가치가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자칭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라이브러리화된 정보들은 태양이 움직인 만큼 저만치 꼬리에서 현재와 멀어져 있다.
이미 데이터 관리분석의 패러다임은 변했다. 예전처럼 강물처럼 흘러들어온 바다라는 데이터베이스(DB)의 시대가 지난것이다. 즉 수집된 결과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연어들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데이터의 실시간 흐름으로 직접 들어가 스트리밍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시대다. 이제 열심히 헤엄치지 않으면 실시간 데이터에서 소외되고 비지니스를 주도하지 못한다. 며칠전 노션(Notion)이라는 노트앱이 무료를 선언한 것은 강을 거슬러 올라갈 채비를 하는거다.
잘 베끼는 이야기를 하기전에 이런 복잡계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자칭 전문가들이 '요즘 이런 것들이 유행하니까 이런거 저런거를 섞어보시죠?'이런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다.
'카피캣'은 '원숭이 흉내 내기'와 다르다. 인디 게임 개발사가 영속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자신을 찾는 것'이다. 보통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성질이다. 그리고 카피캣은 그 과정을 완성하는 전략이다. 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정체성은 독창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창성은 생존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생존하지 못하면 영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복잡계에서 '영속성을 위한 최선 방법은 일관성'이다. 위에서 이야기햇던 이솝우화의 원숭이처럼 내가 10년간 물고기를 잡아온 어부도 아닌데 그물 던지는걸 한번 봤다고 그 어부처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는 말이다.
결국 일관성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한가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게임을 만들려면 비슷한 타입의 게임을 3~5개 정도는 만들어 봐야 그런 게임들이 주는 궁극적인 재미나 감동의 근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굉장히 분석적으로 게임개발을 했어야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고 이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요소'들이 더 늘어난다면 게이머들에게 인정받고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독보성을 만드는 것'만이 인디게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독보성에 대한 설명은 지난글<한국 게임 퍼블리싱 사업의 종말 #7셀프 퍼블리싱의 시대>에 적었던 내용이 있어서 인용한다.
어설픈 '원숭이의 흉내 내기' 시대의 종말
인터넷이 발달하고 글로벌 콘텐츠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세계인은 '실시간 동화의 시대'를 통해 같은 트렌드의 타임라인을 공유하게 되었다. '실시간 동화의 시대' 이전에는 보통 '글로벌 타깃', '글로벌 스타일'이란 말들을 많이 사용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이제 어설픈 '원숭이의 흉내 내기' 방식의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싸이의 음악, BTS의 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에서 성과를 내는 이유는 글로벌 성공 공식을 흉내 내는 어설픈 글로벌 전략이 아닌 그들이 가진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밀고 나간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독창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성공전략의 정체성을 독창성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보다는 '대체 불가'라는 가치를 가진 독보성 <유니크(Unique)>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략이 바로 '초격차 전략'이다.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독보성의 초격차"
국내 메이저 게임 퍼블리셔들은 이러한 시대를 파악하지 못했고 성공의 표면만 복사하거나 자료 <머트리얼(material)>만을 나열하는 구시대의 '원숭이의 흉내 내기' 방식의 전략만을 고집했고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IAP중심의 P2W 모델이 지배하는 모바일 게임이 아닌 페이 투 플레이(Pay-to-play) BM기반의 PC, 콘솔 시장의 진출이 절실한 이유다. 그리고 최근 네오위즈의 행보를 보면 한국 퍼블리싱 사업이 극적 생존의 희망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독보성을 위하여 우리는 '욕망을 직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이 되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독보성을 만들지 못하면 계속해서 트렌드를 쫓다가 주저 앉고 말 것이다.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처럼 사냥하는 법을 배운다. 새끼 고양이는 호랑이의 사냥법을 터득할 수도 없고 호랑이가 될 수도 없다. 인디게임이 어느순간 대규모 광고를 통해 성공한 사례가 많이 있던가? 인디게임은 초반에 화력을 쏟아부어 결과를 내는 전면전이 아니다. 서서히 달아올라 여기저기 퍼져있는 게이머들을 찾아 국지전을 치러야되는 장기전이다. 이런 장기전에서 일관성은 생존에 필요한 지구력이 된다. 물론 이런 복잡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일이다. 그래서 인디게임 개발에서는 이런 복잡계를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복잡계가 객관식 시험문제를 낸다면, 그리고 시간내에 풀 수 있는 문제의 양이 정해져있지 않다면, 결국 하나의 번호로 쭉 찍어나가야 확률상 높은 점수를 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카피캣은 무엇으로 당위성을 획득해야될까? 그리고 일관성있는 게임 개발을 유지하는 가장 가까운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나 이 물음의 대답을 의식적으로 해왔었다.
당위성을 위한 오마주
그리고 이런 베끼기를 위한 원칙을 세운다. 나는 아래와 같은 다섯가지 원칙을 가지고 베끼기를 한다면 카피캣이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가장 재미있게 엔딩까지 플레이했던 게임을 베낀다.
2. 가장 자신있는 자신의 개발 스킬을 게임에 녹인다.
3. 인용의 원칙을 세우고 지킨다.
4. 저작권 침해를 하지 않는다.
5. 일관성을 가진 나의 정체성을 녹인다.
첫번째 원칙 '가장 재미있게 엔딩까지 플레이했던 게임을 베낀다.'는 원칙의 중요성은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라면 한번쯤 이야기 해봤을 '게임 코어루프' 설계에 대한 부분이다. 하나의 게임이 가진 재미를 온전하게 분석하지 못한다면 오마주로써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겉모습만을 베끼거나 게임이 가진 궁극적 재미의 방향을 잘 못 설정한다면 이미 항해의 시작부터 나침반을 잃어버린 상황이 되고 먼 바다로 나가지도 못하고 항구 근처를 빙글빙글 돌다가 굶어 죽거나 암초에 걸려 침몰하는 유령선이 되고 만다.
두번째 원칙 '가장 자신있는 자신의 개발 스킬을 게임에 녹인다.'는 독보성을 만드는 부분이다. 기획적인 요소든 그래픽적인 요소든 프로그래밍 퍼포먼스 부분이든 간에 뭔가 하나는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영역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영역이기도 하다.
세번째 원칙 '인용의 원칙을 세우고 지킨다.'는 내가 만든 게임에 영향력을 미친 선배들의 이름과 게임을 나열하고 그 뿌리를 남기는 것이다. 이 행위는 오마주의 핵심이다. 그리고 나는 이 세번째 원칙을 크레딧의 가장자리가 아닌 게임의 첫 도입부에 명시해보고 싶다.
네번째 원칙 '저작권 침해를 하지 않는다.'는 #6에서도 설명했듯이 게임은 노이즈마케팅으로 흥할 수 없다. 그리고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 누군가의 눈을 피해 남의 물건을 훔칠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업적 편승을 기대하는 물욕이 당신의 모든걸 삼켜 버릴지 모른다.
다섯번째 '일관성을 가진 나의 정체성을 녹인다.'는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복잡계에서 유일하게 보장되는 생존전략이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두번째 원칙을 통해 '대체불가'라는 독보성(유니크)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절대 멈춰있는게 아니다.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운동이다. 위에서도 언급된 태양이 멈춰있는게 아닌것 처럼 정체성 또한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이 상전이 현상과도 비유할 수 있다. 내가 유지하고 있느 '물이라는 성질의 게임'은 주변 복잡계에 의해 고체, 액체, 기체 상태의 변화를 넘나들게 된다. 그렇다고 나의 원래 성질인 물이라는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체성이다. 그래서 정체성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상태를 바꾸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게 중요한 부분이다.
대부분 게임업계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다보니 게임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공유해주시는 페이스북 친구분들이 많다. 그래서 얼마전 페이스북 친구분이 공유해주신 글로 '인디게임과 카피캣'의 마지막을 정리해 볼까 한다.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것들이 게임에 담겨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이렇게 미치는 게임의 영향력이 서로를 위해 건강하게 자라고 가꿔지기를 희망하며 위대한 정원사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본다.
정원은 당신이다. 당신이 정원이다. 당신의 뿌리를 잊지 말아라.
당신이 당신의 정원을 가꿀 때, 당신은 동시에 자기자신을 가꾸게 된다. 자신을 가꾸는 일의 일부는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이고, 당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은 당신의 존엄성을 찾고 당신의 삶을 위해 더 요구할 수 있는 힘을 찾는 일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의 다른 정원들은 물론, 범게임적인 집단화와 노조화를 지지하는 게임 노동자 연합(Game Workers Unite)과 같은 시민운동 단체를 지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