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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PD Aug 25. 2022

탈진실의 시대

진실이 죽어버린 야만의 시대.

최근 우리 사회의 극심한 대립상을 보면 참 무섭다.


다양한 개인의 목소리들은 들리지 않고, 약한 집단이 더 약한 집단에게 자비 없는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시대. 자기의 존재 근거를 타자 부정을 통해 성취하려는 시대.


왜 우리의 다원주의는 더 발전하지 못할까? 이 진흙탕 같은 죽음의 늪이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가 뭘까?


이런 지옥이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진실이 죽었기 때문이다. 진실의 가치가 사라진 사회에서 언론의 무뎌진 칼은 더 이상 약자의 편이 아니고, 파벌싸움으로 날카로워진 소셜미디어는 오직 사익추구에만 전념하는 탈진실의 시대. 진실이 죽어버린 야만의 시대.


사이비 교주를 맹신하는 낙타들은 자신들을 좀 먹고 있는 '복종의 내면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 낙타의 이야기에는 이런 약자들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서서히 길들여진 낙타 무리는 자신들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을 약자에 대한 분노로 해소하려고 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악플을 달며 분노를 배설하며 잠시나마 고통을 마비시키고 현실을 망각한다. 심하게 억압된 내면을 가진 자들은 더 악랄하고 더 비열한 방법으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한다. 공포의 권위적인 힘 앞에 꼼짝할 수 없는 자신을 외면하기 위해 더 분노하고 혐오의 연대를 만든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 건 모두 네 탓이야!"


이런 혐오의 감정을 '원한 감정'이라고 한다. 이런 원한의 목소리는 역사적으로 교조주의적 억압에서 더 잔인해졌다. 그 대표적인 잔혹성이 중세의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이었다. 낙타의 정신을 가진 자들은 항상 자기들이 속한 사회에서 타자로 지목된 사람들을 박해함으로써 가기가 속한 집단의 결속을 강화했고 사익을 추구해 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나약한 인간이라며 자위해왔고,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감정이다.


이런 노예 도덕을 자진자들은 자신을 '선함과 정의의 화신'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착각한다. 증오와 분노는 증폭되고 '고통의 망각'을 지나 쾌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속한 집 단안에서 혐오의 연대를 형성하며 '타란툴라에 물린 미치광이의 춤'을 춘다.


"저들은 마치 열광하고 있는 자들과도 같다. 그러나 저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심장이 아니라 복수심이다. 벗들이여, 충고하건대 남을 징벌하려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그 누구도 믿지 말라! 그런 자들이야말로 악랄한 족속이며 열등한 피를 타고난 족속이다. 그런 자들의 얼굴에는 사형 집행인과 정탐꾼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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