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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Aug 30. 2020

어두울 때 보이는 것들

전등

Georges de La Tour, < La Madeleine à la veilleuse>, 1640


조루즈 드 라 투르의 작품 <작은 촛불 앞의 마리아 막달레나>.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시대 화가 조루즈 드 라 투르는 인공 빛을 잘 활용한 화가로 유명하다.  카라바지오로부터 빛이 만드는 효과를 배운 그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즐겨 표현했다. 어둠 속에 촛불을 밝힌 마리아 막달레나가 앉아 있다. 한 손은 해골 위에 올려놓고 또 한 손은 턱을 괸 채, 그녀는 골똘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 화가는 해골, 십자가, 밧줄 등 허무 혹은 참회를 뜻하는 도상학(圖像學)적 사물을 그려 넣었지만, 막달레나의 몸짓과 표정은 그것과 무관하게 어떤 상념에 빠진 것 같다. 잘 빗겨진 머리와 반쯤 어깨를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보인다. 며칠 전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혹은 얼마 전 받은 편지에 대해 생각 중인 한 여인처럼 보인다. 작은 촛불은 저 방을 밝히기에는 너무 작고 어둡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도상학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그녀의 몸짓과 표정에, 그리고 그녀의 어두운 공간에 담겨 있다. 그녀는 빛 속에 자신을 반쯤 드러내고 어둠 속에 반쯤 가려져 있다. 빛이 만들어 낸 어둠의 공간에서 우리는 그녀를 상상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밝을 때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프랑스 백과전서파 일원인 드니 디드로는 중년의 나이에 소피 볼랑과 사랑에 빠진다. 디드로는 어둠 속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보지도 못하고 편지를 써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씁니다. 적어도 내가 쓰고 싶은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 편지를 쓰는 일은 처음이라서, 
내가 제대로 편지라는 걸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만약 편지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거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읽어주세요.
- 소피 볼랑에게 보내는 디드로의 편지 중에서


아직 전등이 없던 시대, 디드로는 어두운 방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편지를 쓴다. 어쩌면 그 약한 불빛마저 이미 꺼졌는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한 번도 편지를 써 본 적 없는 그는 편지에 정확히 무엇이 쓰이는지 잘 모른다. 환한 빛 아래, 또박또박 분명한 필체로 ‘사랑합니다’라고 써야 했지만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사랑’을 썼고, 그는 확신이 없다. 그는 말한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거든, 텅 빈 편지(지)에서 ‘사랑’을 읽어 달라고. 그에게 사랑은 그가 ‘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읽는 곳’에 있다.



*안바다 신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9월 출간 전 일부 내용을 사전 연재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출간 알람 서비스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07ZgYtLm3aKnQJUMzYSJwMYHQHM2oNBIDpoMlkYAosAeSsw/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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