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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Sep 02. 2020

잘 구워진 위안

주방

Vincent van Gogh, <The Potato Eaters> , 1885

낮고 흐린 램프 아래 작은 식탁이 있는 어느 농부의 집.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딸로 추측되는 그들은 찐 감자와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고흐가 말했듯이 그들은 땅을 판 그 손으로 식사를 한다.

노동과 먹는 일이 분리되지 않는 그들은 노동한 만큼 먹고 먹은 만큼 일한다. 농부들의 거칠고 정직한 손은 가장 근본적인 인간 행위인 노동하는 일과 먹는 일 사이를 관통한다. 고흐는 이 두 가지 일, 노동과 먹는 일 말고는 우리 삶의 모든 일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는 배고파서 먹고, 기뻐서 먹고, 행복해서 먹고, 축하하기 위해 먹고, 불행해서 먹고, 외로워서 먹고, 슬퍼서 먹고, 그저 때 돼서 먹는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무엇인가를 먹는 기관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은, 우리가 매일 사는 일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실은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이고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주방과 식탁은 잘 조리된 음식과 함께 잘 구워진 삶을 내어놓는 곳이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일주일 후면 여덟 살이 되는 아들의 생일을 위해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주문한다. 하얗게 뿌려놓은 별들 아래 우주선이 설치된 발사대와 행성 하나가 그려진 예쁜 초콜릿 케이크다. 하지만 그 생일 케이크에 초가 채 켜지기 전에 아이는 뺑소니 사고를 당하고 만다. 곧 좋아질 거라는 의사의 진단과 위로와 달리 아이는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주문한 케이크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에게 전화해 화를 낸다. 뒤늦게 케이크를 주문한 사실을 떠올린 그녀는 빵집 주인을 찾아간다. 그녀는 아들이 차에 치여 죽었다고 소리치며 울부짖는다. 사정을 몰랐던 빵집 주인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며 커피와 함께 갓 구운 계피롤빵 하나를 건넨다.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부부는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그들은 그가 건넨 빵을 먹는다. 빵과 빛이 있는 그 자리에 그들은 오래 머문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레이먼드 카버, <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녀가 당한 일은 그런 종류의 일 중 하나다. 계피 롤빵 하나가 아들을 잃은 그녀에게 대단한 위로가 되었을 리 없다. 하지만 투박한 빵집 주인의 진의가 담긴 롤빵 몇 개가 그들의 슬픔 몇 개를 잠시 잊게 해줄 수도 있다. 달콤한 맛, 부드러운 촉감,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그것으로, 제빵사의 수고와 시간이 담긴 잘 구워진 그것으로, 그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잠시, 아주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은 그런 일이다. 누군가의 수고와 시간이 담긴, 그래서 어떤 진의가 담긴 음식을 먹는 일은 그렇게 사소하고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외롭거나 삶이 고될수록 수고로운 요리를 하고 그것을 먹는 일이 필요하다. 혼자 먹든 함께 먹든,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와 그것을 천천히 내 몸에 넣는 과정으로 나와 당신은 별거 아니지만 작은 위안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주방과 식탁은 음식을 만들고 차려 놓는 곳이면서, 그곳은 다시 따뜻한 김이 나는 삶과 잘 구워진 위안을 만들고 내어놓는 곳이다.



*안바다 신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9월 출간 전 일부 내용을 사전 연재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출간 알람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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